포브스·블룸버그 “애플 승소, 스마트폰 시장경쟁 해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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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근 모서리의 사각형’은 애플 고유의 디자인인가, 아닌가. 미국 배심원들이 이를 애플 고유의 디자인으로 판정한 것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삼성과 애플은 미국 외에 호주·독일·일본 등 8개국에서 30여 건의 특허소송을 진행 중인데, 지금까지 나온 판결만 놓고 보면 미국 배심원들의 평결은 국제적인 시각과 차이가 있다.

지난해 8월 네덜란드 법원은 갤럭시S 등이 애플의 디자인을 침해하지 않았다고 판결했다. ‘둥근 모서리 사각형’은 휴대전화의 일반적인 특성이라는 삼성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지난 24일 한국 법원도 애플의 디자인 특허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영국 법원 역시 지난달 “50여 개의 선행 제품을 고려할 때 애플 디자인에 독창성이 부족하고, 삼성이 애플의 디자인을 침해하지 않았다”고 했다. 유럽과 한국은 ‘트레이드 드레스’의 적용 범위를 좁게 봤지만, 이번에 미국은 이를 폭넓게 인정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둥근 모서리의 사각형은 한 기업이 독점을 주장할 수 있는 모양이 아니다. 미국 배심원들의 평결은 글로벌 업계 전반의 인식과 동떨어진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미국 내에서도 이런저런 비판이 나오고 있다. 25일(현지시간) 경제전문지 포브스에 따르면 스투룩앤레이번 소속의 피에르 예니 변호사는 “삼성전자의 승리는 소비자에게 더욱 많은 선택을 의미하는 반면 애플의 승리는 시장 경쟁의 저해를 의미한다”고 꼬집었다. 블룸버그도 이날 “애플이 승소할 경우 글로벌 휴대전화 제조업계가 전반적으로 경직될 수 있다”는 하버드 로스쿨 수전 크로퍼드 객원교수의 칼럼을 게재했다. 미국에서 영향력 있는 IT 웹진 중 하나인 엔가젯에는 “네 바퀴로 가는 자동차를 만든 회사가 다른 회사들의 네 바퀴 자동차 개발을 막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댓글이 올라왔다. 다른 네티즌은 “둥근 모양의 햄버거를 판다고 버거킹이 맥도날드를 고소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이번 미국 평결이 미국 법원만의 독특한 주장이 될지, 트레이드 드레스를 인정하는 새로운 추세가 될지는 일본·호주 등 향후 판결이 남은 나라들 법원에서 가려질 전망이다. 당장 이달 말 일본 법원이 이와 관련한 판결을 내놓는다. 애플은 지난해 8월 23일 삼성전자의 갤럭시 S와 갤럭시 S2, 갤럭시탭7이 아이폰·아이패드의 특허를 침해했다며 판매금지와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지방법원인 도쿄지방재판소는 오는 31일 특허 소송의 중간판결을 할 예정이다. 중간판결은 종국(終局)판결에 앞서 소송의 주요 쟁점에 대한 재판부의 견해를 미리 보여주는 절차다. 손해배상액 결정은 종국판결 이후에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은 애플의 아이폰이 나오기 이전에 아이폰과 유사한 디자인의 제품을 일본 소니가 먼저 내놓았던 적이 있는 만큼 일본에서 반전의 계기가 마련되길 기대하고 있다.

박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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