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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판타지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85호 04면

성인소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가 국내 출판계도 뒤흔들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3000만 부가 넘게 팔렸다니, 현상은 현상입니다.
도대체 왜들 이러는 걸까요. 기본적으로 이 소설은 포르노입니다. 정사 장면을 매우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죠. 하지만 인터넷에 들어가면 이 정도 야한 소설은 차고 넘칩니다. 분명 완성도 높은 에로티시즘을 구현한 것은 아닌데, 왜 그렇게 잘 팔리는 걸까요.

포르노라는 진한 양념을 걷어내고 봤을 때, 현대 여성들이 꿈꾸는 판타지를 제대로 그려낸 덕분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선 주인공은 평범(하다고 본인은 생각)한 대학 졸업생입니다. 섹시하고 똑똑한 친구 대신 인터뷰하러 갔다가 젊고 잘생기고 갑부인 몸짱 사장님에게 ‘간택’됩니다. 그게 나라면 얼마나 통쾌하겠습니까.

그런데 그 사장님, 알고 보니 어릴 적 아픔이 있네요. 자연스럽게 모성본능을 자극합니다.
사주는 선물도 남다릅니다. 꽃이나 향수, 명품 신상이 아닙니다. 최신형 애플 노트북, 모토로라 휴대전화, 근사한 스포츠카는 ‘난 다른 여자와 다르다’는 대리만족을 느끼게 하죠.
게다가 변변한 연애 경험도 없는 이 ‘처녀’는 한순간에 요부로 돌변합니다. ‘계약서’를 들이미는 남자에게 자신의 요구사항을 하나 둘 관철시키는, ‘밀당’의 고수이기도 하죠.
급기야 남자는 이렇게 감탄합니다. “오, 내 사랑. 대체 내게 무슨 짓을 한 거야.” 여성들이 가장 듣고 싶은 말은 바로 이 말 아닐까요. 판타지 세상에서만 들을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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