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지식] 격려하고 칭찬했더니, 열 살 지원이 동화작가 됐네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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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베지랜드에 사는 토끼 로리와 도리, 그의 친구들이 수학 캠핑장에 가서 놀이를 하고 있다. 영국에 사는 열 살짜리 배지원 어린이가 작문 숙제로 이야기를 짓고 그림을 직접 그렸다. 일상의 행복한 기억을 되새기듯 쓰고 그린 동화다. 아래 그림은 주인공 도리·로리와 같은 학교에 다니는 악동 친구들. [그림 남해의봄날]

행복한 열 살
지원이의 영어동화
배지원 글·그림
배지원·최명진 옮김
남해의봄날, 160쪽, 1만2500원

영국 초등학교에 다니는 한국 소녀가 작문 숙제로 쓴 영어 동화다. 영어와 글쓰기 조기교육에 관심 많은 학부모들의 귀가 솔깃해질 얘기다. 영국에 살고 있으니 영어로 쓰기야 당연하다고 해도, 대단한 글쓰기 교육 비법이 있을까 싶다.

 그런데 책은 뜻밖의 메시지를 준다. 아이를 상상력이 풍부한 이야기꾼으로 만든 것은 맘껏 뛰어 놀며 경험한 행복한 일상이고, 자신의 얘기에 진심으로 귀 기울여준 부모와 선생님이라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다.

 지원이가 다니는 학교에서는 3~4학년생에게 새로 익혀야 할 어휘를 주고 그 중 가장 생소한 것 다섯 가지를 골라 문장으로 만들어오라는 숙제를 주었다. 선생님은 ‘문장보다 줄거리가 있는 이야기가 더 좋겠다’고 제안했다. 상상의 동물나라 베지랜드의 쌍둥이 토끼 로리와 도리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가족이 이사하는 날로 시작해, 전학해 새 친구를 만나고, 친구들과 캠핑과 현장학습을 가는 일상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선생님의 반응이 시큰둥했어도 이야기가 계속됐을까. 아닐 것 같다. 선생님은 “정말 노력을 많이 했구나. 앞으로 계속해서 보여줄 이야기가 무척 기대된단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다음 주에는 괄호를 문장 끝만이 아니라 중간에도 사용해보겠니? 쉼표도 잊지 말고!”라며 글쓰기 기본을 가르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렇게 완성된 이야기는 모두 27편, 이중 17편과 직접 그린 그림이 책에 담겼다.

 출간을 적극 권유한 것도 작문 선생님이었다고 한다. 책은 아이의 재능을 과시하거나 영국 교육의 혜택을 자랑하는 데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선생님의 섬세한 코칭 방법, 그리고 지원이 어머니 최명진씨가 본 영국 초등교육 현장 이야기를 에세이로 곁들여 무엇이 아이를 창의적으로 만드는지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아이들의 창의력은 학원에서 돈 주고 사는 게 아니라 열 살인 아이에게 ‘행복한 열 살’을 보내게 해주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소박하게 전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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