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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이 있는 길 ① 해남 미황사 ‘천년 역사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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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미황사 부도전에 선 금강 스님(가운데)과 서양원씨(오른쪽) 가족. 스님의 안내로 미황사 ‘천년 역사길’을 함께 걸었다. 부도전에서 시작하는 천년 역사길은 땅끝 해안까지 이어진다. [사진=오종찬 프리랜서]

이제 걷기는 일상이 됐다. 주말 전국의 산과 들은 걷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길도 다양해졌다. 등산로 일색에서 올레길, 나들길, 마실길, 달맞이길 등 예쁜 이름을 가진 길들이 즐비하다. Saturday는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했다. 힐링의 길이다. 걷고 나면 몸이 가뿐해지고, 걷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길이다. 차로 달려 배불리 먹고 편히 자는 여행과는 다르다. 등산화를 신지 않아도 갈 수 있는 길, 놀토에 가족끼리 갈 수 있는 길을 찾아 나선다. 그 첫 번째로 전남 해남의 미황사를 찾았다. 미황사 부도전 옆으로는 1200여 년 전의 전설 속으로 빠져드는 길이 있다. 부도전에서 시작해 땅끝 사자포구까지 이르는 11.5㎞. 동백향 가득한 상록수림과 마을 고샅길, 그리고 바닷가 모래사장을 아우른다. 미황사 금강 주지스님과 함께 이 길을 걸었다. 이번 여행엔 은별(9)·은혁(6) 남매를 둔 동갑내기 서양원·황순환(38)씨 가족도 함께했다.

천년의 설화 시작된 사자포구

 해남을 여행의 끝으로만 알고 달려온 여행객은 땅끝 십 리 못미쳐 동쪽에 자리 잡은 달마산(489m)을 그냥 지나치곤 한다. 달마산은 한반도의 산줄기가 바다로 떨어지기 직전, 마지막으로 솟아오른 봉우리다. 달마는 산스크리트어 다르마(Dharma)에서 왔다. ‘진리’라는 뜻이다. 달마산 아래 아름다운 고찰, 미황사(美黃寺)가 자리한다. 절 아래 마을 서정리에서 올려다보면 짙은 녹음을 발산하는 동백나무와 소나무 숲 사이로 대웅보전의 잿빛 지붕이 한 점 구름처럼 살포시 떠 있다. 보는 이의 눈매를 선하게 만드는 풍경이다.

 미황사에는 금강(47) 스님이 있다. 스님은 20여 년 전, 미황사와 인연을 맺었다. 미청년 스님에서 중년의 아저씨 스님이 된 20년 세월. 그는 서울에서 가장 먼 곳에 자리 잡은 이 절을 ‘템플스테이를 가장 많이 하는 사찰’로 만들었다. 지난 18일 토요일 오후, 스님은 “6월부터 하루도 쉬지 않고 템플스테이를 진행하느라 허리가 안 좋아졌다. 걷는 게 힘들 정도”라고 하면서도 기꺼이 우리 일행을 숲길로 안내했다.

 미황사 부도전 아래 작은 길이 ‘천년 역사길’ 입구다. 길의 이름은 미황사 창건설화에서 비롯됐다. 1200여 년 전부터 내려오는 미황사의 전설은 사뭇 신비롭다. 숙종 18년(1692년)에 세웠다는 부도암 사적비에 전설은 이렇게 기록돼 있다.

 -신라 경덕왕 8년(749년)에 돌로 만든 배가 사자포구에 닿았다. 그곳에는 금인(金人)이 노를 잡고, 배 안에는 화엄경, 법화경, 비로자나 문수보살, 탱화 등이 있었다. 향도들이 모여 봉안할 장소를 의논할 때 갑자기 검은 소 한 마리가 나타났다. 금인이 말하기를 ‘나는 본래 우전국의 왕으로 경상(經像·불경과 불상)을 모실 곳을 찾다 이 산에 일만 불(佛)이 있어 여기에 배를 세웠다. 소에 경을 싣고 나가 소가 누워 일어나지 않는 곳에 봉안하라’-.

 미황사 이름 또한 설화에서 유래한다. 미(美)자는 소의 ‘음매’ 하는 소리에서 따왔으며, 황(黃)자는 금인의 색을 뜻한다. 우전국은 현장의 『대당서역기』에도 등장하는 곳으로, 지금의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 호탄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사자포구는 지금은 땅끝에서 보길도로 가는 배가 닿는 포구다. 그러므로 마을 사람들에게 사자포구에서 미황사 가는 길은 순례의 길인 셈이다.

20년 전엔 잡초만 무성한 황폐한 절터

미황사 부도암에서 바라본 땅끝 바다.

 천년 역사길이 밖으로 알려진 지는 오래지 않다. 미황사는 20년 전만 해도 대웅보전 말고는 동백나무와 잡초만 무성한 황폐한 절터였다.

 “불과 6~7년 됐지요. 미황사는 정유재란으로 불타기 전에는 열두 암자를 거느린 큰 절이었다고 합니다. 많은 수행자가 오솔길을 따라 암자와 암자를 왕래했겠지요. 특히 부도전에서 도솔암으로 가는 이 길이 특히 좋습니다. 묵언 수행하기 좋은 고요한 길이지요.”

 물론 스님들만 다니던 길은 아니다. “마을 사람들은 새해 첫날이나 초파일 새벽에 부처님을 찾아 이 길을 넘어왔겠지요.” 버스가 다니기 전에는 절 아래 마련마을 사람들이 산을 넘어와 월송장으로 가는 길이기도 했다. 순례길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길 초입 참나무 둥치에 ‘땅끝석선댓곶-미황사’라는 작은 이정표가 붙어 있다. 아직 군청에서 마땅한 이정표를 설치하지 않아 천년역사길을 표시하는 것이라곤 이것뿐이다. 하지만 거추장스러운 것이 없어 오히려 한갓지고 좋다.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렸을 길, 자연스레 상상의 세계로 접어드는 문이다.

 길은 처녀지나 다름없다. 발에 닿는 땅바닥은 썩은 나뭇잎이 쌓여 푹신함이 느껴질 정도다. 달마산 서쪽은 이파리 큰 나무가 많아 여름에도 서늘한 편이다. 까맣게 타 들어간 낙엽 향과 바닥에서 올라오는 흙냄새가 길에 가득하다.

 길바닥엔 푸른 상수리 열매가 달린 나뭇가지가 어지러이 널려 있다. 부지런한 청설모의 짓이다. 벌써부터 겨울 양식을 준비하는 청설모가 상수리 달린 나뭇가지를 이빨로 갉아 떨어뜨린 것이다. 이날 트레킹 일행 중 최연소자인 은혁이 달려들어 상수리를 주워 담는다. 황순환씨가 “네가 아무리 열심히 주워도 엄마는 도토리묵 같은 건 못한다”고 해도 아랑곳 않는다. 상수리로 묵을 쑨다는 걸 알 리 없는 아이는 티셔츠 끝자락이 축 늘어지도록 쓸어 담는다. 보다 못한 스님이 쓰고 있던 모자까지 벗어준다. 가을이 되면 오솔길은 꾸지뽕, 다래, 어름, 개암 같은 산열매가 지천이라고 한다.

  한 30분쯤 더 걷다 보면 너덜 지대가 나온다. 스님이 사람들에게 참선하기를 권하는 자리다. 좌선대처럼 너른 바위가 있다. 너덜 지대에서 쉬엄쉬엄 한 시간 정도 더 가면 40년 전 조림한 측백나무 숲길이 나온다. 이곳을 지나면 작은 암자, 도솔암이다. 산길을 가다 만나는 작은 암자는 반갑기 그지없다. 도솔천은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기 전 머물렀던 곳. 주변의 풍광이 암자의 이름과 잘 어울린다. 멀리 시인 곽재구가 『포구기행』에서 언급한 어란(於蘭)포구를 비롯해 그 너머로 작은 섬들이 조각조각 떠 있다.

 금강 스님은 여기까지의 길을 ‘다르마 로드’라 명명했다. 깨달음의 길, 마음 수행의 길이다. 미황사 템플스테이를 거쳐간 이 중 누군가는 ‘꿈의 산책로’라 말했다고 한다. “미황사 템플스테이를 마치고 집에 갔더니 꿈속에 그 길이 나타나더라”는 것이다.

 천년 역사길 트레킹은 여기서 마무리됐다. 절에서 도솔천까지 1시간 반, 아이들과 함께 걷기에는 여기가 좋다. 도솔천을 내려가면 마련마을, 마련에서 다시 산길을 넘어 송호리 해수욕장을 거쳐 땅끝 사자포구에 이른다.

고요한 산사에서 차 한잔

 미황사는 1년 365일 템플스테이가 진행되는 절이다.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이 열릴 때 시작된 미황사 템플스테이를 거쳐간 사람은 약 4만 명, 지난해에는 5000여 명이 미황사를 찾았다. 템플스테이는 격식이 따로 있지 않다. 시간도 대중없다. 하루를 머물러도 되고, 한 달을 머물러도 상관없다. 또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에 시작하는 ‘참사랑의 향기’는 종교에 상관없이 참여할 수 있는 수행 프로그램이다. 7박8일 동안 묵언과 참선, 오후 불식, 산행, 차담으로 이뤄진다. 연차 휴가를 이용해 이 수행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직장인이 꽤 있다.

 공양을 마친 오후 8시, 이날 미황사를 찾은 스무 명의 대중이 한방에 둘러앉았다.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는 차담 시간이다. 특이하게도 스무 명 중 절반이 외국인이다. “땅끝 해남을 찾는 이들은 ‘이곳에 오면 뭔가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오늘 미황사 절 생활 어떠셨나요?” 스님은 스무 명분의 차를 한꺼번에 내릴 수 있는 커다란 다구에 뜨거운 물을 부으며 물었다.

 “딸아이가 한국 드라마를 너무 좋아해 일부러 한국을 찾았다. 서울에서 여기까지 왔지만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어 잘 왔다는 생각이 든다.” 두 딸과 함께 미황사를 방문한 프랑스인 카롤의 답변이다. 독일에서 온 대학생 4명, 역시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온 대학교수 가족도 모두 만족스럽다는 표정이다. 초등 3학년인 은별은 스님과의 차담보다 독일인 남자아이에게 더 관심이 많다. 하지만 수줍음 때문에 말은 못 붙이고 빤히 쳐다볼 뿐이다.

 이튿날 오전 4시, 도량석 목탁 소리와 함께 가람은 다시 깨어난다. 절 안에 기거한 모든 이가 대웅보전에서 모여 예불을 올리는 시간이다. 절을 할 줄 모르는 외국인들도 불공에 열심이다. 형광등 불빛 아래 기도하는 자들의 간절한 표정,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이 아름답다. 보는 것만으로도 신성한 시간이다.

김영주 기자

함께하는 트레킹 퀴즈 정답: ③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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