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기업 맞춤 컨설팅 ⑦ 끝·제이씨현시스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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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현배 회장이 22일 자사 내비게이션이 장착된 차의 운전대를 잡았다. 이 회사는 강소기업 컨설팅을 통해 내비게이션 매출액이 배로 뛰었다. [박종근 기자]

자동차 내비게이션을 만드는 제이씨현시스템 차현배(62) 회장은 올해 초 서울 영등포의 한 내비게이션 매장을 둘러보다 얼굴만 붉히고 나왔다. 매장 직원은 “제품 자체의 기능은 좋은데 회사·제품 이름이 덜 알려져 있다 보니 찾는 고객이 적다”고 답했다. 당시 제이씨현시스템은 첨단 기능의 내비게이션을 내놓았지만 판매는 신통치 않았다. 차 회장은 “제품 성능을 너무 과신한 탓”이라며 “고객이 스스로 우리 제품을 알아봐주길 기다리기만 했지 우리가 먼저 고객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이 부족했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1984년 만들어진 제이씨현시스템은 사운드카드의 명품 ‘사운드 블래스터’로 컴퓨터 매니어 사이에선 잘 알려진 기업이다. 컴퓨터로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는 멀티미디어PC의 시대를 예측하고 이에 발 빠르게 대응한 덕에 회사는 97년 코스닥에 상장돼 현재 연 매출 1000억원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비슷한 시기에 창업했던 정보기술(IT) 1세대 기업 상당수가 사라지고, 90년대 말 코스닥 거품 때 대박을 터뜨렸던 업체 대부분이 흔적도 남지 않았지만 제이씨현시스템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웬만한 PC 기능을 갖춘 휴대전화의 보급이 늘면서 PC의 성장세는 꺾였다. 신성장동력을 찾아야 했다. 그때 주목한 것이 차량용 멀티미디어 기기인 내비게이션이다. 내비게이션에 보고 듣는 PC의 기능을 추가하면 ‘대박’을 낼 것 같았다. 그동안 음성이나 동영상을 지원하는 컴퓨터 부품을 다뤄 왔기 때문에 성공 가능성도 커 보였다.

 그래서 2006년 카오디오를 만들던 회사를 인수해 이듬해 ‘런즈’라는 자체 내비게이션 브랜드를 내세워 시장에 진출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내비게이션 매출 확대에 노력했지만 현재 제이씨현시스템의 매출에서 내비게이션이 차지하는 비중은 10% 남짓에 불과하다. 당초 생각했던 25%에는 턱없이 못 미치는 수치다. 돌파구를 고민하던 차에 회장은 본지에 실린 ‘강소기업 컨설팅’ 기사를 접하고 3월 직접 IBK기업은행의 문을 두드렸다.

 IBK기업은행은 전문 컨설턴트를 파견해 회사의 기술력부터 사업 구조, 제품의 판매 경로 등 경영 전반에 현미경을 들이댔다. 제품군이 다양하고 수준이 높아 연구개발 부문에서는 약점을 찾기 어려웠다. 그러나 소비자의 입맛과 트렌드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해야 할 마케팅 부분은 낙제점이었다. 사원급 직원 달랑 한 명이 제품 판매와 홍보를 총괄하고 있었다.

 김범규(41) 컨설턴트는 “내비게이션 기술력은 업계 최고 수준이었고, 가격대도 경쟁사에 비해 40%나 저렴해 경쟁력을 갖췄다”며 “그럼에도 내비게이션 매출이 저조한 것은 제품을 알리는 방식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김 컨설턴트는 경쟁사와 런즈의 인지도부터 비교해 봤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온라인 포털사이트의 검색어 조회수에서 런즈의 노출 빈도는 아이나비의 100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우선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단기간에 효과를 볼 수 있는 온라인 마케팅에 집중하기로 했다. 포털사이트에서 ‘내비게이션’이라는 단어를 치면 런즈 제품이 상단에 노출될 수 있도록 하고, 파워 블로거와의 제휴를 통해 제품의 성능을 알렸다.

 주먹구구식 마케팅도 문제였다. 신제품을 출시하면 e-메일로 소개하거나, 길거리에 현수막을 걸어놓는 게 고작이었다. 공동구매 이벤트를 진행하더라도 일부 온라인 동호회에서만 이뤄지다 보니 마케팅 효과는 제한적이었다.

 기업은행은 고객을 세분화해 맞춤 마케팅 전략을 펼칠 것을 조언했다. 자동차는 연령대와 경제력에 따라 선호하는 차종이 천차만별이다. 김 컨설턴트는 “중저가 차량을 선호하는 25~35세 고객을 대상으로 12개월 무이자 할부가 가능하다는 점을 대리점에서 적극적으로 알리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대리점에서 제품이 팔릴 때마다 인센티브를 제공해 판촉 동기를 부여하도록 했다.

 이후 온라인을 중심으로 입소문이 퍼지면서 런즈 홈페이지 방문자 수가 폭발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덕분에 온라인 쇼핑몰의 매출은 불과 4개월 만에 30% 이상 늘었다. 내비게이션을 바로 차량에 설치하기 위해 대리점을 직접 찾은 고객 수도 50% 이상 증가했다. 제이씨현시스템은 올해 내비게이션 부문 매출이 약 250억원으로 지난해의 배로 뛸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차 회장은 “매출이 점점 떨어지면서 회사 전체가 위축됐지만 이번 컨설팅으로 우리도 이렇게 하면 더 많이 팔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되찾았다”고 말했다.

위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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