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정부 야심작' 햇살론 첫 대출자, 지금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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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7월, 서울 한 신협 지점에 박모(57)씨가 햇살론을 빌리러 왔다. 햇살론은 저신용·저소득층에게 연 10%대 저금리로 빌려주는 서민대출로 이명박 정부가 서민대책으로 내놓은 야심작. 박씨는 이 신협 지점의 1호 햇살론 대출자였다. 인테리어 소품 공장에서 일하는 박씨는 이미 사채 4000만원 정도를 쓰고 있었다. “공장이 어려워 월급이 제때 안 나옵니다. 애들 학비며 생활비가 모자라서…. ” 생계자금으로 받을 수 있는 햇살론 한도는 1000만원. 그는 이날 800만원을 빌려 돌아갔다. 2년이 지난 지금, 박씨의 삶은 좀 나아졌을까. 아니었다. 그는 개인회생 절차를 밟고 있다. 쌓이는 빚에 치여 지난해 가을 법원에 채무 조정을 신청한 것이다. 신협 담당자는 “박씨는 애초 연 30%대 사채 빚 수천만원을 쓰고 있어 햇살론 800만원을 빌려봤자 큰 도움이 못 됐을 것”이라며 “그래도 1년 정도 꼬박꼬박 빚을 갚으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대표적 서민금융 햇살론이 불황의 수렁에 빠졌다. 2010년 7월 출시된 햇살론으로 6월 말까지 모두 23만 명이 2조1000억원을 빌렸다. 본지가 햇살론 취급이 상대적으로 많은 전국 56곳 제2금융회사 지점의 1호 대출자 56명을 추적 조사한 결과, 이 중 13명(23.2%)이 빚을 제때 갚지 못하고 있었다. 1호 대출자들은 모두 2010년 7월 햇살론 출시 직후 대출을 받았다.

연체 이유는 실직이나 폐업, 사업 부진이었다. 2년여 경기 침체의 그림자가 햇살론 대출자들에게 고스란히 드리워진 셈이다. 연체자 13명 중 5명은 2년 새 일자리를 잃었다. 5명은 일감이 부족해 수입이 들쑥날쑥했다. 그 밖에 사업 부진 1명, 폐업이 1명이었다. 나머지 1명은 연락 두절 상태였다.

 각 금융회사가 집계하는 햇살론 연체율은 6월 말 기준 7% 안팎. 본지가 추적한 초기 대출자들의 연체율이 전체 평균보다 훨씬 높은 것이다. 서울 한 신협 직원은 “우리 지점 햇살론 1호 대출자는 실직으로, 2호 대출자는 폐업으로 연체 중”이라며 “초기 대출자 열에 서너 명은 연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김준경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햇살론은 물론 서민금융 연체율이 가파르게 치솟을 것”이라며 “경기 침체로 소득이 줄고 집값마저 떨어져 생긴 구조적인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문제는 복지 차원에서 풀어야지 서민금융으론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서민금융 연체가 가계부채발 위기의 신호탄이 될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22일 파이낸셜타임스(FT)는 “한국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64%로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 초기보다 더 높은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신용회복위원회는 이날 “올 들어 7월까지 채무구제 프로그램(프리워크아웃) 신청자가 9729명으로 2009년 4월 제도를 시행한 이후 최대”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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