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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화기행] 문경 새재 조곡관

중앙일보

입력

임진왜란 초기 신립(申砬) 장군이 탄금대가 아닌 문경새재에서 왜군을 막았다면 전쟁의 결과가 달랐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이유로 임진왜란 후 새재에는 3개의 관문이 들어섭니다.

문경 쪽에서 출발하여 제 1관문인 주흘관(主屹關) 을 지나 계곡 길을 따라 올라가면 길손에게 숙식을 제공하던 조령원(鳥嶺院) 터를 지나게 되며, 용추(龍湫) 계곡의 우측 언덕에 새로 지어졌던 교귀정(交龜亭) 이 나그네를 반깁니다.

조선시대에 세워진 보기 드문 한글 비석인 '산불조심' 비를 지나면 험한 벼랑 계곡에 선조 27년(1594) 에 축성한 조곡관(鳥谷關) 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새재 관문 중에서 제일 처음 지어진 성문으로 조동문(鳥東門) 이라고 불렸으나 1907년 의병과 토벌대의 전투로 훼손돼 75년 중건하면서 조곡관으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누각은 팔작지붕에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로서 단청을 올렸습니다. 홍예문은 높이가 3.6m, 폭이 3.56m, 문짝 두께 11㎝이며 성벽의 높이는 4.5m로서 문루에 올라서면 의병들의 함성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듯 합니다.

조곡관에서 3.5㎞를 더 오르면, 새재 정상에 제 3관문인 조령관(鳥嶺關) 이 있어 북쪽을 방어합니다.

신작로가 생기고 기찻길이 뚫리면서 새재는 도로로서의 역할을 끝냈으나 이제는 오히려 옛 고갯길의 정취를 간직한 소중한 답사처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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