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미당·황순원 문학상 - 본심 후보작 지상중계 ⑦ 삶, 그 비루함과 지질함에 대하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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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흠 작가는 ‘더 송’의 지질한 주인공과 닮았냐는 질문에 “신경질적인 건 닮았는데, 남 탓 보다는 내 탓을 많이 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사실은 저 요새 소설을 발(?)로 써요.”

 등단 11년차, 백가흠(38)은 이제야 소설 쓰는 재미를 알겠다고 했다. 출판사 청탁이 들어와도 신나서 이야기를 쏟아낸다고 했다. ‘발로 쓰는 것’처럼 쉽게 쓴다는 농은 그래서 나온 것이다. 독하고 그악스러운 서사를 쉽지 않게 풀어왔던 그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전에는 제 이야기, 주변의 이야기를 쓴 적이 없어요. 그러다 다음 소설집부터는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야겠다’ ‘내 기억을 털어야겠다’ 싶었죠. 사실 그 동안 버거웠거든요. 큰 이야기를 쓰는 게 고통스러웠어요. 내가 살려고 마음을 바꿨습니다.”

 올해 황순원문학상 후보작에 오른 단편소설 ‘더 송’은 백가흠이 자신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 첫 번째 소설이다. 주인공 박준은 우리 사회의 ‘지식인’이라는 교수다. 하지만 그는 지질하다. 이유 없이 엘리베이터에서 방귀를 끼고 가래를 뱉는다.

 또 잦은 외도로 아내와는 별거 중이며 학생 성추행 사건에 휘말려 징계 위기에 있다. 사면초가에 직면했을 때 문득 머릿속에 대학시절 동거녀의 친구, 미현이 떠올랐다. 미현이 맡긴 개를 내다 버린 이후로 자신의 인생이 꼬인 것만 같다.

 “대학 때 매일 싸우던 여자친구의 친구가 있었어요. 정치적 방향이 달라서요. 그 친구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됐어요. 남자 주인공은 제가 되겠네요. 허위와 위선에 능통한 남자의 이야기예요.”

 작가는 첫 소설집 『귀뚜라미가 온다』에서 다뤘던 남자 이야기로 돌아간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다만 첫 소설집이 남자의 판타지가 이 세상을 어떻게 파괴시키는가 골몰했다면, ‘더 송’은 그 파국을 견뎌내는 남자의 이야기라 훨씬 더 비애스럽다”고 했다.

 작가의 초창기 소설에는 살인·강간·폭력 등이 난무한다. 이야기를 촉발시키는 것은 남성의 거대한 트라우마였다. 변화는 세 번째 소설집인 『힌트는 도련님』부터 시작됐고, ‘더 송’ 에 이르러서는 자극적 서사보다 인물의 심리에 집중한다. 주인공 박준을 괴롭히는 것은 거대한 트라우마가 아니라 개 한 마리다.

 그는 “무심한 기억, 찰나의 것 들이 어떻게 현재의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가 관심이 생겼다. 예전엔 트라우마가 크면 클수록 소설 속 세계도 커진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거꾸로 작은 이야기에서 어떻게 큰 이야기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고민한다”고 했다.

 ‘더 송’은 연작시리즈다. 3편까지 발표했고, 앞으로 총 8편의 ‘못난’ 남자 이야기를 쓰겠다고 했다. 그런데 왜 제목이 ‘더 송’이냐고 물었다.

“인간이 살면서 자신 안에 문제가 있는데 바깥만 바라보는 것 같아요. 비루하고 지질하죠. 또 그걸 포장하려 하고, 한심한데, 그게 또 인생이지 않을까요. 그게 노래 같다고 생각했어요. 인생 자체가 노래가 아닌가. 그러니 이번 연작은 삶의 노래, 균열의 노래입니다.”

백지은 예심위원은 “백가흠의 이야기는 대체로 피해·가해의 이분법적 구도가 무화(無化)되는 지점을 포함함으로써 윤리적 관점 자체를 심문하는 미묘한 긴장이 있다. ‘더 송’은 무엇보다 선명한 캐릭터가 인상적이다”라고 평했다.

◆백가흠=1974년 전북 익산 출생. 200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귀뚜라미가 온다』 『조대리의 트렁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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