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디 '악마의 시' 완역본 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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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영국에서 처음 출간된 이래 작가에 대한 전세계 이슬람교도들의 처형 위협으로 큰 화제가 됐던 소설 『악마의 시(원제 'The Satanic Verses' ) 』(문학세계사) 가 완역됐다.

이전에 나온 축약 번역본에 비해 1년여 번역기간을 거쳐 총 8백여 쪽, 전 2권으로 나온 이번 완역판에서는 원작의 '말맛' 까지 최대한 살려보고자 한 출판사 및 역자의 노력이 느껴진다.

인도 출신의 작가 살만 루시디(54) 가 이 작품 때문에 겪은 일들은 그야말로 소설보다 극적이다. 이슬람교를 모독하는 내용이 들어있다는 이유로 89년 이란의 지도자 호메이니가 저자 처형명령을 내리면서 그의 목에 걸린 현상금은 한때 2백80만달러까지 치솟았다.

영미 대형 서점들이 폭탄테러 위협 때문에 한동안 작품 진열을 중단했는가 하면 일본인 번역자는 살해됐다. 98년 하타미 이란 대통령의 사형선고 철회 후에도 여전히 신변위협을 느끼던 루시디는 지난해 미국 뉴욕으로 이주하면서 다소 안정을 찾았다는 소문이다.

이같은 화제성 때문에 정작 소설 자체나 작가에 대한 문학적인 평가는 국내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알고 보면 루시디는 이 작품 이전에 이미 『한밤중의 아이들』로 영국령 국가들 최고의 문학상인 부커상을 수상했으며, 95년작 『무어의 한숨』으로 유러피언 아리스티언 문학상을 타기도 했다.

『악마의 시』 또한 88년 영국의 휘트브레드 최우수 소설상과 89년 독일 올해의 작가상을 루시디에게 안겨 준 작품. 문학의 영원한 주제인 '선과 악의 대결' 을 현란한 상징과 언어로 형상화, '마술적 리얼리즘의 대표작' 이라는 평가까지 받았다.

어느 겨울 아침 인도발 점보기가 영국 해협 상공에서 폭발하면서 두 남자가 살아 남는다. 인도 배우 지브릴 파리슈타와 철저한 친영파(親英派) 살라딘 참차. 이들은 각각 천사와 악마의 모습으로 변해 꿈과 현실, 그리고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최후의 순간까지 대결한다.

여기에 나비들로 몸을 감싼 어느 예언자의 기상천외한 순례 여행, 에베레스트 단독 등반을 재촉하는 유령에게 시달리는 여자 이야기 등이 절묘하게 섞여 있다.

때문에 예언자 무하마드를 빗댄 인물 '마훈드' 에 대한 부정적인 묘사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전체적으로는 선과 악 뿐 아니라 남과 여, 식민과 피식민 등 현실세계의 수많은 대립과 갈등 문제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작가의 다양한 언어 '유희' 와 내용이 다소 난해하게도 느껴지는 이 소설은 『도둑신부』.『총, 균, 쇠』 등의 번역으로 호평을 받아온 김진준(37) 씨가 옮겼다.

그는 "처음엔 '루시디 파문' 때문에 막연한 두려움도 느꼈지만 오히려 '좋은 기회' 가 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며 "실제로 작업하는 동안 '20세기 최고의 문제작 중 하나' 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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