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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용어투성이 논문 주고 고3 논리력 평가하는 대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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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대입 인문계 논술시험에 대학원생도 이해하기 어려운 지문들이 출제돼 논리력·사고력을 묻는 시험이 ‘독해(讀解)’ 테스트로 변질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일부 대학은 교양 수준을 벗어난 전공 학자들의 최신 저서나 SSCI급(Social Science Citation Index·사회과학논문인용색인) 영어 논문을 인용하는 등 고교과정을 벗어났다는 분석이다.

 본지가 교육시민단체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공동대표 송인수·윤지희)과 함께 지난해 서울 11개 대학의 인문계 논술 전체 지문 173개를 분석해보니 서울대·고려대·연세대 등 8개 대학은 교과서에서 인용한 지문이 하나도 없었다. 교과서에서 출제한 서강대(10.3%), 경희대(13.3%), 한국외국어대(16.7%) 등도 그 비율이 낮았다.

서울대·연세대·고려대는 자체 추천 교양 권장도서에서도 지문을 따오지 않았다. 이들 3개 대학의 권장도서 400권(서울대·고려대 각 100권, 연세대 200권)과 논술시험 지문 22개를 비교한 결과다. 제시문들은 주로 수험생이 접하기 어려운 논문과 학술서적에서 인용했다.

연세대는 사이언스지에 실린 브루너와 포터의 ‘시각적 인지 실험’에 대한 논문과 프레더릭 테일러(행정학), 윌리엄 제임스(심리학) 등이 쓴 학술서적에서 따왔다. 고려대는 노먼 콘(역사학)의 ‘천년왕국운동사’ 등 대학원생도 이해하기 어려운 고전도 출제했다. 서울대는 3개의 긴 지문을 주고 답안 작성에 5시간을 주며 사법시험 수준의 답안 분량(6000자 내외)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 대학은 “교과서에서 지문을 내거나 독서 범위를 제시해주면 비슷한 답안이 많아 채점이 곤란하다”며 “변별력 확보를 위해 생소한 지문을 내는 것”이라고 밝혔다.

 서강대는 수험생이 2시간 동안 10개의 지문을 읽어야 하는 시험에 스티븐 룩스(사회철학), 시어도어 드 배리(중국학),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철학) 등 다양한 저자의 글을 활용했다. 이화여대는 석·박사급 연구자들이나 보는 SSCI급 영어 논문을 원문 그대로 인용했다. 최혜실(국문학) 경희대 교수는 “논술 문제를 보니 개념어가 너무 많아 교수인 나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며 “전문지식이 없으면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글을 갖고 고교생의 논리력을 평가하려는 것은 모순”이라고 말했다.

중앙일보·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기획
◆특별취재팀=성시윤(팀장)·천인성·윤석만·이한길·이유정 기자, 박소현 인턴기자(이화여대 언론정보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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