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진남, 엽기녀를 만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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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태현과 전지현, 떠오르는 그림 하나. 맑고 순진한 그녀, 웃기는 남자. 하지만 영화 「엽기적인 그녀」에서는 뒤바뀌었다. 웃기는 여자, 순진한 남자로. 전지현과 차태현, 서로 옷 바꿔 입기가 이루어진다. 영화 「엽기적인 그녀」를 보자.

■ 순진남 차태현 10문 10답


》 첫 영화로 「엽기적인 그녀」를 선택한 이유는?
두 시간 만에 시나리오를 다 읽었어요. 진짜 웃겼어요. 제가 하면 무척 재미있겠다고 생각했죠. 원작에서는 착하고 순진한 캐릭터지만, 전 숙맥에 순진하기만 한 연기는 하지 않을 거예요. 첫 영화니까 욕심 좀 부려야죠.

》 순진남 견우는 어떤 남자인가요?
아주 얌전한 대학생.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난 그녀에게 이끌리면서 온갖 수모와 고통을 참아내요. 「해피 투게더」에서도 지현이를 무작정 쫓아다녔는데, 이 영화에서도 스타일은 다르지만 계속 쫓아다닐 거예요.

》 유머스런 캐릭터를 벗어났는데…
삼류 건달, 웃기는 남자, 코믹한 양아치…. 그게 제 이미지처럼 굳어졌죠. 뭐, 그게 싫은 건 아니에요. 어차피 전 연기자니까 새로운 것도 해봐야 하는 거고. 첫 영화
니까 오히려 백팔십도 변신이 덜 두렵죠.

》 영화 속에서 엽기녀에게 그냥 맞는다면서요?
이보다 더 망가질 수는 없어요. 머리카락 헝클어져 부스스하고, 입술은 터져 벌겋게 부어오르고. 이게 어디 여자에게 맞는 겁니까. 드라마에서 숱하게 망가져봤지만 이 영화는 장난이 아니에요. 이리 채고 저리 맞고. 하지만 터지고 깨져도 관객들이 웃어만 준다면야, 그게 대수겠어요.


》 진짜 엽기적인 그녀가 여자친구라면?
아무리 예뻐도 그런 여자랑은 창피해서 함께 못 다녀요. 술에 취해 전철 안의 승객 머리에다 토하는 여자, 아 무서워요. 술집에서 원조교제하는 것 같으면 달려가 깽판 놓고, 고함 지르고. 어, 정말 도망치고 싶어요.

》 힘들었던 촬영이 있다면?
엽기녀에게 여기저기 맞아 입 부르트고서도 태연스레 해장국을 먹는 장면이 있었어요. 무려 세시간 동안 국물의 온기가 식지 않도록 NG 때마다 뜨거운 육수 국물을 부었죠. 그날 입천장 다 데어 밥도 제대로 못 먹었어요. 영광의 상처라고 여기고 맘 편히 먹었습니다. 이보다 더한 것도 있겠거니 하고 말이죠.

》 영화와 드라마 촬영, 어느 쪽이 잘 맞나요?
어느 게 ‘잘 맞나느냐”보다 ‘더 어려우냐”가 맞는 질문 같네요. 드라마는 좀 편한 느낌이에요. 여러 번 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그냥 제 모습 그대로 보여주면 되는 그런 캐릭터가 많았죠. 하지만 영화는 처음이고, 캐릭터도 낯설고. 그렇다고 적응 기간이 많이 걸릴 거 같지는 않아요. 저야 뭐 적응 능력이 뛰어난 놈이니까요.

》 가수활동은 접는 건가요?
물론 계속할 거예요. 일정이 빡빡하긴 하지만 음악활동을 할 수 있는 건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어떻게든 다 할 겁니다. 후속곡 ‘체념’에서는 라이브로 승부할 거예요. 최근엔 좀 무리를 해서 병원신세를 진 적도 있지만, 열심히 뛰어야죠. 노래도 영화도 처음이니까.

》 순진남 견우랑은 많이 다른 편인가요?
어떻게 보면 닮은 구석이 많죠.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좋아하는 거에 빠지는 스타일. 왜 엽기녀를 위해 갖은 수모를 당해도 다 참잖아요. 그렇게까지는 못 하겠지만, 어쨌든 그렇게 막 달려가는 집념은 맘에 들어요. 제 안에도 그런 면이 있다고 생각하구요.

■ 엽기녀 전지현 10문 10답


》 전혀 다른 캐릭터, 불안하진 않나요?
진짜 고민 많이 했어요. 지금까지 제가 맡아보지 않았던 캐릭터였으니까요. 하지만 시나리오를 볼수록 자신감이 생기더라구요. 제 안에 그런 면이 없는 것도 아니어서, ‘뭐, 못할 것 없지’라고 맘먹었어요. 목소리 크고, 진짜 화 잘 내고, 생각나는 대로 행동하는 거, 현실에선 못하잖아요. 영화 속에서 맘껏 해볼 거예요.

》 소설「엽기적인 그녀」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나요?

그거 모르면 간첩이게요. 유행어였잖아요. 제 친구들 핸드폰 초기화면은 엽기 시리즈로 다 채웠어요. 저도 딱 일주일 간 엽기를 갖고 다녔죠. 하지만 책은 영화에 캐스팅되고 난 뒤에 읽었어요. 그리고 원작자 김호식 씨를 만났어요. 정말 그분, 소설 속 순진남이더군요. 정말 착한 인상이었어요.

》 엽기적인 그녀는 어떤 여자인가요?
실연의 아픔에 헤매는 여자, 상처를 절대 겉으로 드러내려 하지 않아요. 그런데 어이없게도 그 아픔을 거칠게 나타내죠. 말도 막 해요. 불의를 보면 못 참고, 정의감에 불타 있죠. 그거 다 마음이 아파서 그런 거예요. 대신 순진남이 힘들죠. 다 받아주고, 참아줘요. 실연의 상처를 다독거려줘요.


》 실제 엽기적인 그녀를 만나봤나요?
제가 생각하는 것과 설정한 것이 헷갈릴 거 같아 일부러 만나지 않았어요. 시나리오 속 캐릭터는 어차피 제가 만들어가는 거니까요. 엽기녀가 견우에게만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엽기적인 행동을 하는 거, 다 이유가 있어요. 그걸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연기로 보여드릴게요.

》 제작 발표회가 신선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영화 제목에 맞춰 제작 발표회도 엽기적으로 했죠. 엽기녀와 순진남의 결혼식이었어요. 두 주인공의 첫만남 장소가 바로 지하철이거든요. 초청 하객은 인터넷에서 신청을 받았어요. 물론 신랑 신부는 저와 태현 오빠였구요. 주례는 원작의 주인공 김호식 씨였죠.

》 촬영장에서 차태현과 애드리브 경쟁을 벌인다던데…
그거 다 짠 거예요(힐끗 차태현을 쳐다보며). 태현 오빠가 시켜서 한 거죠. 제가 엽기녀로 나오잖아요. 그리고 태현 오빤 순진남이구요. 캐릭터가 바뀌면 더 재미있었을 거 같지만, 사람들의 생각을 뒤엎어야죠. 전지현은 웃기고, 차태현은 진지하다!

》 요즘에 제일 많이 쓰는 말
너, 죽을래? 대사 중에 그 말이 많거든요. 누가 요즘 그런 말 쓰나요. 입에 붙지 않아 연습중이에요. 근데 저도 모르게 자꾸 입 밖으로 튀어나와요. 코디 언니랑 메이크업 언니한테 연습하듯 쓰던 게 이젠 버릇이 됐어요. 조금 맘에 안 들면 “너, 죽을래?” 하고는 영화 핑계로 도망치죠.

》 긴 생머리를 고집하는 이유는?
고집? 글쎄요, 이게 제일 예쁘잖아요. 고등학교 때는 짧은 단발이었는데. 머리 정말 빨리 자라요. 영화 찍을 때마다 웨이브를 넣었다, 하나로 묶었다, 뭐 그런 식으로 약간의 변화를 주죠. 정말은 자르기 아까워요. 이번 영화에서는 자연스럽게 풀고 나올 거예요. 천방지축 엽기녀잖아요. 곱상하게 묶고, 깔끔하지는 않을 거예요.

》 차태현 씨와는 두 번째 연기죠?
「해피 투게더」 때 처음 만났죠. 지금은 같은 소속사여서 그전에 볼 기회가 많았어요. 태현 오빠, 진짜 웃겨요. 재밌고, 편하고. 물론 영화는 제가 먼저 했으니까, 제가 선배죠. 선배 노릇 단단히 하고 있어요, 하하.

》 최근 새롭게 빠진 일은?
낚시. 스무 살 여자애가 무슨 낚시냐구요? 하하, 그건 다 영화 「시월애」 때문이에요. 강화도 석모도의 변덕 심한 날씨 때문에 번번이 촬영이 중단돼서 진짜 심심했어요. 촬영장 인근 유료 낚시터에서 매니저 오빠랑 물고기를 낚으며 시간 때웠죠. 그때부터 낚시가 정말 재밌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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