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집안 싸움' 아시안게임조직위

중앙일보

입력

2002 부산 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에 바람 잘 날이 없다.

개막이 5백여일밖에 남지 않고 대회운영 예산 확보, 경기장 건설, 마케팅 등 해결해야 할 과제는 산적해 있는데 이런 일들을 해야 할 조직위원회 집행부 위원들은 만나기만 하면 갈등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7일 열린 집행위원회와 조직위 위원총회에서 보인 위원들의 행태는 '이러다가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을 줄 정도였다. 이날 회의는 공석 중인 사무총장 선임을 비롯해 세입.세출 등 예산 문제를 다룰 예정이었다.

그러나 집행위원회 위원장인 우병택(禹炳澤)씨는 아예 회의에 나오지 않았다. 주재할 사람이 보이콧을 해버렸으니 회의가 제대로 될 리 없었다.

禹위원장은 "개인 사정" 이라고 했으나 김운용(金雲龍)조직위원장과 안상영(安相英.부산시장)수석부위원장이 자신을 배제한 채 신임 조직위 사무총장을 내정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시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어 열린 조직위 위원총회에서는 위원간의 감정대립이 그대로 폭발해버렸다.

박종웅(朴鍾雄)의원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위원장 선거로 바쁜 줄 아는데, 부산아시안게임을 소홀히 하는 게 아니냐" 고 하자 金위원장이 "안하겠다" 며 의사봉을 던지고 퇴장했다.

이 과정에서 조양득(趙良得.부산시의회 운영위원장)위원이 "부산을 뭘로 보느냐" 며 金위원장이 아시안게임 준비에 소홀하다는 취지의 말을 하자 金위원장은 "그따위 버릇이 어딨어" 라고 받아치기도 했다.

위원들간의 이런 갈등은 지역인사들의 과도한 '애향심' 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이다.

지방에서는 처음 열리는 부산 아시안게임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지역인들이 적극 참여하고 목소리를 내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대회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국제통에다 경험이 많은 대한체육회장을 조직위원장으로 영입해놓고 쓸데없는 '지역 푸대접론' 을 제기하며 대립을 빚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물론 金위원장의 대응도 비난받을 부분은 있다.

사태를 추스르려는 노력은 않고 감정을 그대로 표출한 것은 국제대회를 총지휘하는 공인의 자세로 보기 어렵다. 국제대회를 준비하면서 집행부가 중앙과 지방으로 갈려 집안싸움을 벌이고 있으니 한심한 일이다. 모두 각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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