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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태극기 답시다” 중학생들의 호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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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자신들이 사는 동네 아파트 주민들을 상대로 ‘태극기 달기 운동’을 펼친 중학생들. 왼쪽부터 김성록군, 최현진양, 민다은양. 김희연양은 다른 일정으로 인해 함께 촬영하지 못했다.

지난 12일 오후 1시 경기도 고양시 화정동 별빛마을 아파트 7단지. 중학생 4명이 비가 내리는 아파트 단지를 분주하게 뛰어다녔다. 이들은 우산도 쓰지 않은 채 단지 내를 다니며 엘리베이터와 현관에 전단을 붙였다. 고양 화정중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민다은·최현진·김희연양과 김성록군은 비에 흠뻑 젖었지만 즐거운 표정이었다.

 “지난 7월 17일 제헌절에 저희 7단지 1000여 가구 중 태극기를 게양한 집을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태극기 달기 운동’을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지금 올림픽 경기가 한창인데 밤늦도록 열성적으로 응원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나 태극기를 사랑하는 마음이 우리나라도 적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어 용기를 냈습니다. 8월 15일 광복절에 꼭!!! 태극기를 달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꾸벅.”

 민양 등은 이런 내용의 전단을 단지 내 16개 동 34개 엘리베이터에 붙였다. 또 1136가구 모든 집 현관문에 ‘8월 15일 광복절은 태극기 다는 날입니다~ 바쁘시더라도 잊지 마시고 꼭 달아주세요~ *^^*’라고 적힌 작은 쪽지를 남겼다. 엘리베이터와 현관에 전단·쪽지를 전부 붙이는 데 꼬박 6시간이 걸렸다.

 ‘태극기 달기 운동’을 주도한 민양은 “현충일·제헌절에 아파트 경비실 말고 거의 태극기를 단 집이 없어서 속상했다”고 말했다. 민양은 친구들에게 “광복절에 태극기를 달자는 내용을 적어서 전단을 돌리자”고 제안했다. 민양은 “초등학교 3학년 때 미국 친척집에 갔는데 평일인데도 성조기를 자랑스럽게 내건 집들을 봤다. 국경일에도 태극기를 잘 달지 않는 우리 모습이 떠올라 부끄러웠다”며 친구들을 설득했다. 민양 등은 “1000가구가 넘는 집을 일일이 찾아 다니느라 다리는 좀 아팠지만 아파트 전체에 태극기가 휘날릴 것을 상상하면서 힘을 냈다”고 입을 모았다.

 당찬 중학생들의 제안에 주민들은 대부분 ‘기특하다’는 반응이다. 주민 김성민(35)씨는 “태극기 다는 걸 깜빡할 때가 많은데 다시 한번 반성하게 됐다. 어린 친구들이 기특한 일을 했다”고 말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 관계자도 “사적인 게시물은 금지돼 있지만 아이들이 좋은 일을 해서 그냥 놔뒀다”고 말했다.

이가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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