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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보료 소득단일화 부과가 대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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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규식
연세대 교수·보건행정학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를 고치겠다고 발표하자 직장근로자 부담이 증가하느니, 지역가입자 소득 파악이 안 되는데 소득기준으로 보험료를 매길 수 있겠느냐는 등의 비판이 나오고 있다. 단일보험료 부과체계를 만들지 못하면 건강보험을 통합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던 필자 입장에서는 건보공단의 발표가 신선하게 들린다.

 2000년 김대중 정부가 건강보험을 통합하고도 근로자는 임금을 기준으로 건보료를 부과하고, 지역주민은 소득 파악이 어렵다는 구실로 가구원수·소득·재산(전세 포함)·자동차를 기준으로 매겼다. 돈은 같이 사용하도록 통합해 놓고 보험료 내는 방법은 달리해 건보통합의 본질이 훼손됐다. 지난 1년 동안 보험료 부과와 관련된 민원이 6000만 건을 넘었다. 직장과 지역이 보험료 매기는 방법이 다르니 직장에서 지역으로 가거나 반대로 지역에서 직장으로 가면 보험료가 달라지는 경우가 연간 5000만 건이 넘는다. 건보공단 직원은 민원처리와 자격변동 처리 업무에 매달려 다른 일을 못할 지경이다.

 정책당국은 보험료 매기는 잣대를 하나로 만들 근본적 대책은 세우지 않고 문제가 있을 때마다 땜질식 처방을 해왔다. 지난해 국회에서는 직장근로자 가운데 종합소득이 연간 7200만원을 초과하는 사람에게 추가보험료를 부과하는 법을 통과시켜 다음 달부터 적용할 예정에 있다. 종합소득이 있는 근로자 모두를 대상으로 추가 보험료를 부과한다면 모를까, 일정액 이상의 사람에게만 추가보험료를 붙인다는 것은 돈을 잘 버는 사람에게 징벌을 가하자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들은 이미 근로소득세와 종합소득세를 낼 때 누진율을 적용받았다.

 소득이 한 푼도 없는데 건보료를 내는 55세 이상이 109만 가구에 달한다. 60대 은행 퇴직자가 건보료 부담 때문에 집을 내놓았고 피부양자가 11명이나 되는 경우도 있다. 건보료 부과체계의 모순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번에 건보공단은 직장과 지역의 건보료 부과 기준을 소득으로 통일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소득기준 단일보험료 원칙에 대해 찬성하지만 근로자 부담 증가, 실행방안, 부가세에 건보료 부과 등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단일보험료가 언뜻 근로자의 부담을 늘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모든 근로자의 부담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종합소득이 있는 10% 정도의 직장가입자의 부담만 늘어난다. 이들의 상당수는 임금근로자가 아니라 직장가입자로 편입된 고소득 전문직들(자영업자 포함)이다. 설령 다른 소득이 있는 근로자의 부담이 조금 늘어나도 보험료 부과를 단일 기준으로 하면 생애 재분배가 가능해진다. 젊을 때 조금 더 부담하다가 은퇴한 뒤 혜택을 본다. 소득이 없는데도 보험료 때문에 집을 파는 일은 사라질 것이란 얘기다.

 일각에서는 부가세가 소득 역진적(逆進的)이어서 여기에 건보료를 얹으면 저소득층에 불리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소득이 전혀 발생하지 않는 아파트나 자동차에 건보료를 붙이는 것보다는 낫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소득이 잘 드러나지 않는 사람도 버는 만큼 소비를 하기 때문에 부가세를 활용하면 소득과 비슷한 정도의 보험료를 거둘 수 있다.

 최선책을 찾기 어려우면 차선책이라도 마련해야 한다. 지역주민 소득파악 타령만 하다 연간 6000만 건의 민원이 발생하고 있는 현재의 보험료 부과 방법을 언제까지 고수할 것인가.

 보험료 부과 방법의 개혁이 필요한 또 다른 이유는 지속 가능한 건보제도를 만들기 위해서다. 현재 보험료 수입의 80%는 근로자의 임금에서 나오고, 근로자의 80% 이상은 20~49세다. 젊은 근로자들의 임금소득에 의존하는 꼴이다. 급속한 인구 고령화로 젊은 근로자층은 2006년 감소하기 시작했다. 이대로 뒀다가는 건보제도가 견딜 수 없다.

이규식 연세대 교수·보건행정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