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민주노총의 불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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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한별
사회부 기자

13일 오후 6시 민주노총 홈페이지에 통일위원회 명의의 짧은 논평이 올라왔다. “노동자 통일 골든벨 행사에서 나타난 돌발적인 문제를 활용해 민주노총 전체를 낡은 색깔론으로 왜곡하고 탄압하는 그 어떤 의도에 대해서는 단호히 맞설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민주노총은 최근 조합원 등을 대상으로 편향된 통일교육을 해 논란을 빚었다.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교재를 배포했고, 퀴즈 형식 이벤트를 통해 친북(親北)·반미(反美) 답변을 유도했다.

 통일위는 바로 이 통일교육을 주관한 조직이다. 하지만 이번 논란과 관련한 입장은 이게 전부였다. 수차례 전화를 걸어 직접 입장을 들으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핵심 간부인 통일국장은 아예 전화를 받지 않았다. 퀴즈 행사 사회를 본 전교조 소속 백모 교사는 “조·중·동과는 통화하지 않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서울 중구의 민주노총 사무실 앞에는 아예 본지와 몇몇 언론사의 “출입과 취재를 금한다”는 푯말이 서 있다. 일부 언론의 출입을 원천 봉쇄하는 것이다.

 민주노총 통일위는 ‘불통(不通)’ 이유로 일부 언론이 “편향된 색깔공세, 종북(從北)몰이를 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사실일까.

 익명을 요구한 한 민주노총 관계자는 “문제가 된 통일교육은 민주노총이 아니라 사실상 특정 정파의 행사였다. 그쪽이 주관하는 줄 모르고 참석했던 사람들이 다녀와서 ‘당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그는 “(노동)현장에선 ‘그 사람들 아직도 정신 못 차렸다’는 말까지 돌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가 언급한 ‘특정 정파’는 통일위를 장악하고 있는 민족해방(NL) 계열을 지칭한다. 이전부터 ‘북한의 입장을 대변한다’는 의심을 받아왔던 조직이다. 하지만 조직 구성과 활동 내역 등이 뚜렷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 지난 5월 이념 논쟁의 발단이 된 통일교과서를 만들었을 때도 저자의 신분조차 밝히지 않았었다.

 민주노총 내부에서조차 비판이 나오는 이념 몰입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이 과연 ‘편향된 색깔공세’와 ‘종북몰이’일까. 민주노총은 67만 명의 조합원을 거느린 거대 조직이다. 조합원의 복지와 이해를 대변하는 게 기본 책무이고 그간 역할을 해왔다. 그런 민주노총이 한국 노동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노조’ 그 이상이다. 통합진보당 지지철회 여부를 놓고 세간의 집중 조명을 받은 게 대표적인 예다.

 그런 민주노총을 이념 논쟁에 빠뜨리게 한 당사자들이 입을 다무는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다. 대중과 언론 앞에 나서 떳떳하게 주장하고 입장을 밝히는 게 초심을 되찾는 방법인 것 같다. 67만 조합원들도 그런 모습을 원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