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팀 무기는 서열파괴와 일체감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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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위전에서 일본을 물리친 올림픽 축구대표팀이 홍명보 감독의 헹가래를 준비하고 있다. 홍 감독은 ?일체감?의 리더십으로 올림픽 축구 사상 첫 메달을 일구어냈다. [연합뉴스]

홍명보(43) 감독이 이끈 올림픽 축구대표팀이 한국 축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런던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내며 사상 최초로 메달권 입상에 성공했다. 11일 새벽(이하 한국시간) 영국 카디프 밀레니엄 스타디움에서 열린 일본과의 동메달 결정전에서 한국은 박주영(전반 38분)과 구자철(후반 12분)의 연속 골에 힘입어 2-0으로 완승을 거뒀다.

23세 이하 선수들이 주축을 이룬 대표팀은 동메달과 함께 ‘병역 혜택’이라는 값진 선물을 받았다. 이뿐만 아니라 2년 뒤 열리는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 대한 기대감을 한층 높였다. 결국은 소통과 존중의 힘이 승리의 원동력이었다. 서열의 벽을 과감히 허물고 모두를 하나로 묶은 홍명보 감독의 리더십이 한국 축구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소통과 존중이 승리 원동력
홍명보팀 관계자들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일체감’이라는 단어를 자주 썼다. 주장 구자철(23·아우크스부르크)은 영국과의 8강전에서 승리한 직후 “우리 팀을 받치는 뿌리는 일체감이다. 우리의 조직력은 세계 어느 팀과 비교해도 모자람이 없다. 어떤 팀과 만나도 두려움 없이 나설 수 있다”고 말했다.

일체감은 지난해 3월 올림픽팀을 처음 조직한 이후 홍명보 감독이 가장 강조한 요소다. 홍 감독은 세계적인 강호들이 두루 나서는 올림픽 본선 무대에서 경기력만으로 한국이 메달권에 오르긴 힘들 것으로 봤다. 보완책으로 제시한 것이 팀워크다. 방법은 솔선수범이었다. 원칙을 정하면 감독·코치와 선수들이 똑같이 지켰다. 홍 감독은 식사 시간, 훈련 시간, 팀 미팅에 항상 제일 먼저 나타났다. 이번 대회 기간 중에 정한 ‘이동 및 식사 중 휴대전화 사용 금지’ 규칙 에도 예외 없이 따랐다.

일본과의 동메달 결정전 후반 막판에 김기희(23·대구)를 교체 투입한 건 ‘홍명보식 일체감’의 대표적인 예다. 김기희는 이번 대회 4강전 이전까지 홍명보팀 최종 엔트리 18명 중 유일하게 출전 이력이 없었다. 단체종목의 경우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더라도 경기에 출전하지 않으면 병역 혜택을 받지 못한다. 홍 감독은 경기 후 공식 기자회견에서 “다 함께 노력해 동메달을 땄는데, 병역 혜택을 못 받는 선수가 나온다는 건 우리 팀 정서상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나머지 선수들이 두 골 차로 앞서준 덕분에 걱정 없이 기희를 투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선수들도 교체 타이밍에 의심 없어
홍명보 감독은 감정의 기복이 없다. 항상 냉정하고 침착하다. 선수 선발·교체도 철저히 선수의 체력과 전술 변화에 맞춘다. 홍명보팀에서는 ‘붙박이 주전’이라는 말이 없다. 그저 실력과 경기 당일 컨디션이 출전 여부를 결정 짓는 요소다.

이런 리더십은 결국 ‘신뢰할 만한 결정’을 만들어낸다. 홍 감독은 가봉과의 조별리그 3차전에서 0-0으로 맞선 후반에 박주영과 박종우(23·부산), 김보경(23·카디프시티) 등 주력 선수 세 명을 교체했다. 가봉에 세 골 차 이상으로 승리할 경우 조 1위로 8강에 오를 수 있었으나 무리하지 않았다.

사실상 조 2위가 확정된 만큼 8강전 이후를 대비해 주축 선수들의 체력을 아끼는 쪽을 택했다. 같은 상황은 브라질과의 4강전에서도 반복됐다. 스코어가 0-2로 벌어지자 홍 감독은 동메달 결정전을 염두에 둔 교체를 단행했다. 선수들은 이 같은 감독의 판단을 그대로 믿고 따랐다. 구자철은 “단 한 번도 선수 교체 방식이나 타이밍에 대해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다. 다만 내가 주어진 임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만 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진심 담긴 격려에 투지 활활
영국과의 8강전을 앞두고 홍명보 감독은 지동원을 따로 만나 “너를 선발 명단에 포함시킬 생각이다. 지난 시즌 이곳 영국에서 뛰며 겪었던 여러 가지 설움을 마음껏 풀어보라”며 등을 두드려줬다.

지동원은 2011~2012시즌을 앞두고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클럽 선덜랜드에 입단했지만 주전 경쟁에서 밀려 벤치 멤버 신세에 그쳤다. 홍 감독은 지동원의 아픈 곳을 콕 찌르면서도 강한 신뢰를 함께 보여줘 선수의 마음에 불을 질렀다. 진심이 담긴 격려는 지동원을 춤추게 했다.

모든 영국인의 관심이 집중된 이 경기에서 지동원은 전반 29분 멋진 선제골을 터뜨려 감독의 신뢰에 보답했다. 경기 후 지동원은 “감독님이 평소에 많은 말씀을 하시진 않는다. 하지만 짧은 말 속에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호소력이 담겨 있다”고 했다.
관계기사 2, 4, 5p

런던=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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