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빈 배’로 흔들리는 금강산 길

중앙일보

입력

금강산號가 표류하고 있다. 출항한 지 2년5개월 만의 일이다. 관광사업을 할수록 적자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급기야 현대상선측이 남북한 정부에게 특단의 대책을 요구하고 나섰다. 관광료를 내리고, 카지노 등 부대사업을 허가해 주지 않으면 사업을 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금강산호는 이제 여기서 멈춰 설까? 금강산 관광사업의 경과와 투자된 비용의 손익계산, 앞으로 전개될 시나리오를 집중 탐구한다. <편집자>

금강산 관광사업이 2년5개월 만에 좌초위기를 맞고 있다. 육로 관광이 이루어진다면 또 모를까, 배가 뜰 때 금강산 구경을 다녀와야 할지도 모르겠다.

금강산 사업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대북사업의 꽃’에서 애물단지로 전락한 것은 무엇보다 애초에 채산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금강산호’는 만선(滿船)은커녕 ‘빈 배’에 가깝다.

한 해에 50만명에 이를 것으로 예측됐던 관광객 규모는 지난 2년5개월 동안 고작 40만명에 머물고 있다. 그 바람에 이를 추진했던 현대 계열사들은 경영이 악화됐다.

지난 4월 들어 금강산을 다녀왔거나 관광선 승선을 예약한 관광객은 5천6백여명. 1년 전인 지난해 같은 달(1만7천9백명)의 3분의 1 수준에 그치고 있다.

현대 대북사업의 추진 주체인 (주)현대아산은 1998년 11월 이 사업을 시작한 이래 관광 대가로 북한에 3억5천6백만 달러를 보냈다. 관광 시설투자에 쏟아부은 1억3천만 달러까지 합치면 금강산 사업은 무려 5억 달러를 집어삼켰다.

“북한에 보낼 돈도 없다”

그 여파로 현대아산은 자본금(4천5백억원) 잠식상태에 빠졌다. 결국 3월분 금강산 관광료 송금 마감날인 지난 3월30일 돈을 못 보냈고, 2월분도 약정금액의 6분의 1인 2백만 달러만 보낸 상태다. 현대아산측은 “2월분 미지급금 일부를 포함해 이 날 1천만 달러를 보냈어야 하는데 자금이 바닥나 못 보냈다”고 밝혔다.

관광객을 모으고 실어 나르는 현대상선은 아예 금강산 사업을 포기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현대상선은 현대아산 지분의 40%를 쥐고 있는 대주주이기도 하다.

재계에선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현대상선으로선 더이상 수익성 없는 사업을 지속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은 게 사실이다. 지난해에만 8백76억원의 손실을 본데다 올 들어서도 하루 평균 2억원 규모의 적자를 내고 있는 현대상선은 최근 채권단으로부터 관광사업 중단 압력까지 받고 있는 실정이다.

관광객 수도 지난해보다 절반 이상으로 급감하는 등 상황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현대상선은 지난 12일부터 관광선 운항 편수를 절반으로 줄였다. 현대상선은 한발 더 나아가 현재 운항 중인 유람·쾌속선 네 척 중 유람선 두 척을 조만간 아예 철수시켜 선박 소유회사에 되돌려주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관광사업을 당장 그만둔다는 것은 아니지만 조만간 특단의 조치가 취해지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사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현대 내부에서 금강산 관광의 사업성에 회의적인 시각이 고개를 들고 있다.

단적으로 현대건설이 현대그룹에서 떨어져 나가면 금강산 사업은 현대로서도 더이상 매력적이지 않다. 정부와 채권단의 방침대로 현대건설에 대한 출자전환이 이루어지고 대주주에 대한 감자가 실현되면 현대건설이야 생존하겠지만 더이상 현대가의 일원이 아니다. 이 때문에 현대건설 없는 대북사업은 현대그룹 차원에서는 사업성이 전무하다는 분석마저 나오고 있다. 금강산 사업은 전력·도로·철도 등 북한 인프라 건설 진출을 위한 교두보로서의 가치가 최우선이었기 때문이다. 대북사업 자체의 명분이 소멸했다는 얘기다. 현대아산의 한 고위 관계자는 “현대건설이 공기업이 된 마당에 현대아산·현대상선 모두 사업을 계속해 봤자 얻을 게 없을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수익모델로서의 가치를 상실했다는 것이다.

‘금강산호’ 선장인 정몽헌 회장은 대북사업을 밀어붙일 힘이 빠지고 있다. 최근 그의 장모이자 현영원 현대상선 회장의 부인인 김문희씨가 현대엘리베이터의 최대주주가 된 것에 대해 재계는 현대건설의 이탈로 재편될 그룹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하기 위한 그의 포석으로 해석하고 있다. 친정체제를 강화하기 위한 수순이라는 것이다. 이런 판국에 그가 현대상선 등 주력사들의 손실을 외면하고 대북사업에 매달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자칫 중소 그룹으로의 재편마저 흔들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몽헌 힘 빠지고, 몽구 외면하고

그렇다고 정몽구 회장이 이끄는 현대자동차에 손을 벌릴 수도 없다. 정회장은 현대그룹이 주도하는 금강산 사업 등 대북사업에 코 꿰이 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는 “정몽구 회장이 방북을 추진 중이며 대북사업 참여를 검토 중”이라는 보도가 나오자 자신이 현대그룹의 대북사업에 휘말리는 것처럼 비쳐져 현대차의 주가가 떨어질까 봐 “대북사업은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는 사업”이라고 선언, 가뜩이나 수세에 몰린 정몽헌 회장을 코너에 몰아넣었다.

정부로서는 남북 화해와 교류를 상징하는 금강산 사업을 도와주고 싶지만 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임동원 통일부 장관이 최근 금강산 관광의 활성화를 돕기 위해 동해안 도로를 이용한 육로 관광 등의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당국간 협의 등으로 시간이 걸릴 뿐더러 성사 가능성도 미지수다.

금강산 사업을 지렛대로 한 현대에 대한 지원은 자칫 특혜 시비를 낳을 수도 있다.

정부는 현대측이 승인을 신청한 카지노 임대사업과 면세점 승인사업에 대해 “북한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사업으로 북한의 승인 사항”이라며 조심스레 승인을 시사하고 있다.

정몽헌 회장은 4월 24일 북한을 방문해 관광 대가를 포함해 대북사업 전반에 관해 논의한다. 현대아산측은 북에 지불하는 관광 대가를 현행 정액제에서 관광객 수와 연동시키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강구해 왔다.

남북정부 모른척 하기도 곤란

경제논리로만 보면 금강산 사업은 구조조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그렇다고 남북 교류의 물꼬를 튼 뱃길을 경제논리로만 재단해 끊을 것인가?

민주당 장성민 의원은 공기업을 포함해 국내 기업들이 참여하는 컨소시엄을 구성해 금강산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로서도 남북관계 개선에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금강산 관광사업을 쉽게 포기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북한도 관광료 수입만 연간 1억5천만 달러에 달하는 금강산 관광사업의 중단을 ‘나 몰라라’ 하진 않을 것이다.

금강산 관광선을 처음 띄울 당시 정부가 표방한 정경분리 원칙도 광의의 경제논리다. 민간기업이 적자를 감수하며 사업을 하도록 하는 것은 시장경제의 원리에도 맞지 않을 뿐더러 신사적이지도 않다. 적어도 유동성 위기에 빠진 민간기업이 자기 책임하에 사업 지속 여부를 판단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할 것이다.

이필재 기자 jelpj@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