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야 + 올림픽 관성 효과 … 밤새 켠 에어컨 낮까지 계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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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전력이 200만㎾대를 기록해 전력경보 ‘주의’ 단계가 발령된 6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국전력거래소에서 직원들이 불을 끈 채 근무를 하고 있다. [뉴스1]

지난 5일 밤 9시쯤 서울 양천구 목동아파트 3단지. 갑작스러운 정전에 주민들은 공포에 떨고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집마다 켜놓은 에어컨과 전기제품 탓에 단지 내 변압기에 과부하가 걸려 아파트 서너 개 동이 약 15분간 정전됐다. 수차례 “제발 절전해달라”는 방송이 나왔지만 소용없었다. 4단지 주민 이선인(26·대학생)씨는 “지난주에 정전이 있은 뒤 전기사용을 자제해달라는 안내문이 엘리베이터에 붙었다”며 "언제 정전될지 몰라 식구가 2명 이상 있을 때만 에어컨을 트는 데도 불안하다”고 말했다. 비슷한 시각 대치동 은마아파트에서도 변압기 과부하로 6개동 600여 가구의 전깃불이 꺼졌다. 이날 서울 낮 최고기온은 36.7도. 18년 만의 불볕 더위를 기록한 데다 열대야와 올림픽 시청까지 겹쳐 전력 수요가 급증했다.

 전력 수요는 6일 오후 3시 사상 최대치인 7429만㎾까지 치솟았다. 이 순간 예비전력은 279만㎾로 떨어졌다. 박성택 지식경제부 전력산업과장은 “수요 감소 등 비상조치가 없었다면 예비전력이 16만㎾까지 떨어졌을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의 예상을 깬 전력난은 ‘불볕더위’와 ‘올림픽 관성 효과’가 겹치면서 생겼다. 한국전력 관계자는 “33도 이상 되는 폭염이 지속되고, 열대야가 이어지는 가마솥 더위 속에 냉방 전력 수요가 폭증했다”고 말했다.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은 “올림픽 경기를 보며 밤새 에어컨을 켠 뒤 아침과 낮까지 이러한 전력 사용 행태를 이어가는 일종의 ‘관성 효과’가 확산한 것도 원인”이라고 말했다. 한전에 따르면 올여름 월요일 전력 사용이 최대를 기록했던 지난달 23일과 비교해 올림픽이 한창이었던 6일엔 시간대별로 평균 300만㎾가량 전력 수요가 급증했다.

 정부는 이날 전력 사용이 급증하자 단계별로 ‘준비(10시)→관심(10시17분)→주의(11시5분)’ 경보를 발동하고 비상조치에 돌입했다. 한전은 ‘주의’ 경보 직후 미리 약정된 전국의 230곳 사업장에 대해 전기 공급을 일시 중단했다. 이를 통해 100만㎾가량의 전기 수요를 줄였다. 가까스로 예비전력은 279만㎾를 유지할 수 있었다.

 기업들도 비상에 걸렸다. 삼성중공업은 자체 발전기를 긴급 가동해 필요 전력의 4%를 조달했다. 두산중공업은 전력 소비가 많은 창원 공장의 100t 전기로 조업을 오후 5시 이후로 미뤘다. 삼성전자는 26도이던 실내온도를 27도로 올렸다. 포스코도 주의보가 내려진 뒤 사내 게시판에 절전 행동요령을 알렸다.

 정부의 수요 관리로 일단 급한 불은 껐지만 앞은 첩첩산중이다. 현재 전력 공급 능력은 모든 발전기를 동원할 때 7708만㎾ 정도다. 당초 정부가 예상한 8월 중순의 최대 전력 수요는 7652만㎾ 수준으로 어느 정도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이미 6일 최대 사용량이 예상을 크게 웃돈 데다, 7일 수요는 7700만㎾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양광석 지식경제부 전력산업과 팀장은 “7일이 고비다. 당초 예상보다 200만㎾가량 전기 사용이 늘어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수요 감축에 실패하면 예비전력이 바로 ‘제로’로 떨어질 수 있다. 이 경우 대규모 ‘블랙 아웃’은 아니더라도 지역별 순환 정전이 불가피하다.

 정부는 아직 통제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이미 성수기 전력 수요를 체계적으로 줄이기 위해 두 달 전 기업들과 ‘휴가 분산’ 약정을 맺었다. 이를 통해 하루 200만㎾가량 전력 수요가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대책들은 미봉책에 그친다. 전경련 임상혁 상무는 “폭염이 지속되면 수요 증가를 감당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며 “정부 대책이 하늘만 바라보는 천수답으로 비판을 받는 이유”라고 말했다.

◆전력 경보=예비전력의 구간에 따라 5단계로 나뉜다. 공급 가능 전력에서 사용량을 뺀 예비전력이 500만~400만㎾이면 ‘준비(정상)’ 단계다. 400만~300만㎾는 ‘관심’ 단계로 절전 유도 대책이 시행된다. 300만~200만㎾는 주의 경보. 미리 약정한 산업 현장에 시간 단위로 전기를 끊는 조치가 발동된다. 200만~100만㎾면 ‘경계’ 경보가 발동되고 전국 방송을 통해 절전을 요청한다. ‘100만㎾’ 밑으로 떨어지는 ‘심각’ 단계에선 지역별 순환 정전에 돌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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