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배드민턴 져주기, 선수들만의 책임인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김 식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한국시간 4일 오후. 런던 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대표팀 선수들이 귀국했다. 정경은(KGC인삼공사), 김하나(삼성전기), 하정은(대교눈높이), 김민정(전북은행) 등 여자복식에 출전한 선수들은 도망치듯 인천공항을 떠났다. 이들은 져주기 경기에 대한 죄책감으로 입을 닫고 고개를 떨어뜨렸다. 올림픽 효자 종목인 한국 배드민턴은 이렇게 추락했다.

 같은 시간 런던에서는 남자복식 세계랭킹 1위 이용대-정재성(이상 삼성전기)조가 마티아스 보에-카르스텐 모겐센(덴마크)조에 1-2로 패하며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이용대-정재성 조의 플레이는 평소 같지 않고 무기력했다. 한국 배드민턴이 노골드로 올림픽을 끝낸 건 2000년 시드니대회 이후 12년 만이다.

 성적이 떨어진 것보다 명예가 추락한 것이 더 부끄럽다. 게다가 이번 사건의 책임을 선수에게만 전가하려는 움직임이 있어 더욱 실망스럽다. 대한배드민턴협회와 성한국 대표팀 감독은 한 발 뒤로 물러나 있다. 정경은-김하나 조는 지난달 31일 중국 조와 서로 져주기를 하다 이겼다. 하정은-김민정 조도 인도네시아 조에 지려 했던 경기에서 승리했다. 단지 느슨한 플레이를 한 게 아니었다. 대놓고 네트나 라인 바깥으로 셔틀콕을 날렸다. 비싼 돈을 주고 올림픽 경기를 찾은 관중은 크게 분노했다. 야유가 쏟아졌고 입장권 환불을 요구했다. 세계배드민턴연맹(BWF)은 청문회를 열어 4개조 선수 8명을 모두 실격 처리했다. 중국은 이를 받아들였고, 말레이시아는 이의신청을 했다가 철회했다. 한국 대표팀은 “중국이 먼저 져주기를 해서 우리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항변했지만 이의신청이 기각됐다. 대한체육회가 선수 4명과 김문수 대표팀 코치를 선수촌에서 내보낸 뒤에도 대한배드민턴협회는 남은 경기를 준비하는 데 바빴다. 성한국 감독은 “선수단을 제대로 이끌지 못해 죄송하다. 선수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책임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알맹이가 빠졌다. 선수가 감독의 지시 없이 그렇게 눈에 띄는 플레이를 하기는 불가능하다. 성한국 감독도 협회의 동의 내지 이해 없이 져주기를 지시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도 없다. 선수가 자의적으로 져주기를 했다면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하고, 협회와 감독이 이를 기획했다면 어른들이 더 큰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데 어른들은 “아이들 잘못이다. 제대로 키우지 못한 내 탓”이라고 말하고 있다. 사건의 본질을 충분히 알리지 않은 채 감정에 호소한 사과만 했다.

 런던 올림픽 최악의 스캔들로 꼽히는 져주기 경기 여파는 다른 선수들에게도 미쳤다. 동료 선수들이 모든 책임을 떠안고 쫓겨나듯 떠났는데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진짜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는 이제부터라도 따져봐야 할 것이다.

김식 문화스포츠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