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 의사 부인, 시신 버릴때 따라간 이유는..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강남 산부인과 의사 김모(45)씨의 30대 여성 사체 유기 혐의 사건의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지난달 31일 경찰이 수사에 착수한 이후 자고 나면 하나씩 새로운 단서들이 추가되면서다. 3일엔 의사 김씨가 환자 이모(30)씨가 숨지기 직전, 먼저 문자메시지를 보내 수면유도제(미다졸람) 투여를 권유한 사실이 새로 드러났다. 또 투여 후 두 사람이 성관계를 맺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김씨의 부인이 사체 유기 과정에 동행했다는 진술도 나왔다.

경찰은 일단 유흥업소 종사자인 이씨에게 미다졸람은 투여했다가 숨지자 한강변 주차장에 내다버린 김씨와 그의 사건 당일 수상한 행적 등으로 볼 때 타살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수사중이다. 하지만 유일한 용의자이자 사건 현장 목격자인 의사는 사체 유기 혐의는 인정하지만 살인이나 과실치사는 아니라고 주장하고, 시신은 말이 없다. 경찰이 결정적 증거를 찾지 못할 경우 이번 사건은 2009년 사망한 팝가수 마이클 잭슨의 재판이 될 수 있다. 사망 원인을 두고 치열한 법적 공방이 이어질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의료 과실인가, 고의 살인인가=서울 서초경찰서는 3일 김씨가 성적 흥분제로 미다졸람을 사용한 단서를 잡고 경위를 집중 조사중이다. 조사 과정에서 김씨가 사건 당일인 지난달 30일 오후 10시쯤 술을 마시고 이씨에게 '영양제 맞을래'라는 휴대전화 문자를 먼저 보낸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씨는 문자를 받고 자정쯤 병원에 왔고 김씨는 이씨에게 영양제에 미다졸람을 섞어 투약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씨는 15분쯤 잠 들었다가 깨어난 뒤 김씨와 함께 있었고 둘 사이에 신체적 접촉도 있었다"고 밝혔다. 이는 "이씨에게 투약을 한 뒤 나는 두시간동안 다른 침대에서 잠을 잤다. 깨어보니 숨져 있었다”고 했던 김씨의 당초 진술과 배치된다.
만일 둘 사이에 성관계가 있었다면 의료사고보다 고의 살인 쪽으로 무게가 실린다. 김씨는 “이씨와 내연관계는 아니다”고 주장했지만, 경찰은 "김씨가 이씨에게 3~4달에 한번씩 연락해 투약 후 성관계를 맺은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한다.

◇미다졸람 진료 기록 안 남겨=김씨가 미다졸람을 투약하면서 진료기록을 남기지 않은 것도 석연찮다. 김씨는 처방전을 발행하지 않은 채 이씨에게 미다졸람을 투약했다. 경찰은 김씨가 이씨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은폐하기 위해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의료 행위를 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이날 처방전이 없는 것을 알면서도 의사 김씨에게 수면유도제를 내주고 장부에 기재하지 않은 간호사 2명에게 출석을 요구했다.

◇사체 유기 아내도 알아=김씨는 지난달 31일 오전 5시쯤 한강 잠실 수영장 주차장에서 이씨의 시신을 유기할 당시, 부인 서모(40)씨와 함께 간 것으로 조사됐다. 김씨는 오전 3시 30분쯤 사체를 실은 자신의 차를 몰고 집에 들어와 부인에게 "환자를 실수로 죽였다"고 말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김씨는 병원으로 돌아와 숨진 이씨의 외제차로 사체를 옮겨 실었고, 이 차를 타고 한강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남편이 집→병원→한강으로 움직이는 동안 부인은 자신의 차로 뒤따랐다. 서씨는 사체를 유기하는 남편을 기다렸다가 차에 태우고 돌아왔다. 경찰은 서씨를 사체유기 방조 혐의로 입건, 조사중이다. 서씨는 경찰조사에서 “남편이 이씨와 부적절한 관계에 있는 줄 몰랐다”고 진술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이날 경찰이 김씨에 대해 신청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박병삼 영장전담판사는 "사안이 중하고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고 발부이유를 밝혔다.

김민상 기자 stephan@joongang.co.kr
양지호 인턴기자(서울대 외교학과)

☞마이클 잭슨 판결=잭슨의 주치의 콘래드 머레이(59)가 마취유도제 프로포폴을 과다 주사한 뒤 응급조치를 취하지 않은 혐의(과실 치사)로 지난해 법정 최고형을 받은 1심 판결. 머레이는 “잭슨이 프로포폴에 중독된 줄 몰랐다”며 혐의를 부인해 공방이 계속됐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