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부채 없는 지도자 나올 때” vs “벤처 구루로 남는 게 도움”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82호 07면

요즘 정치권에선 ‘안철수’ 세 글자가 상한가지만, 경제계에선 금기어(禁忌語)인 듯하다. 평소 말깨나 하던 인사들에게 의견을 구하면 덕담이든 힐난이든 입을 꾹 다문다. 기업계, 그중에서도 안철수 브랜드의 모태라 할 정보기술(IT) 업계에선 그런 현상이 더 심하다. 민감한 시기에 말 한마디가 예기치 못한 설화(舌禍)를 낳을 수 있어서다. 사업하는 사람으로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안철수는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란 직함에도 불구하고 ‘정치인’ ‘대선 후보’의 문턱에 바짝 다가와 있다. 안철수에 대한 경제계 비평을 찾다가 비교적 솔직한 생각을 털어놓은 두 사람을 어렵사리 만났다. 1980년대 벤처 1세대 시절 기업가로서 교류한 조현정(55) 비트컴퓨터 회장, 그리고 옛 정보통신부와 재정경제부 장관, 국회의원을 지낸 강봉균(69)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이다. 강 위원은 “부채(흠집을 지칭) 없는 사람 중에서 대통령이 나올 때”라고 성원한 데 반해, 조 회장은 “그를 아끼는 입장에서 벤처 구루(큰 스승)로 남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안철수 바라보는 두 경제인의 시각

국가경제 정책통, 강봉균
지난 3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 6층에서 만난 강봉균 연구위원. 그는 정장 윗도리부터 벗더니 안철수를 보는 정치권의 부정적 시선을 우선 꼬집었다. “안 원장이 대선에 나갈 것 같다. 그렇다 보니 국정 경험이 없느니, 주변에 인재나 조직이 없느니, 말들이 많다. 다 갖춘 사람이 어디 있나. 진지한 마음과 철학이 중요하다. 국정경험이나 조직의 부족은 대통령이 되면 금세 해결된다.”

안철수

강 위원은 안 원장에 대해 “진지하게 어려운 사람들을 이해하고 복지·정의에 고민하는 사람”으로 봤다. “안 원장은 부채가 없는 사람이다. 당당하게 국정을 이끌 수 있다. 그런 대통령이 필요한 때다. 사람·조직이 넘치는 정치인은 그것에 뒷다리를 잡혀 정권 말기에 문제가 터진다. 인재는 많다. 상황에 따라 구하면 된다. 안철수는 기존 정치권 눈으론 ‘변종’일지 모르지만, 새로운 시각으로 보면 ‘국가의 자산’이다.”

안 원장과 개인적으로 만난 적은 없단다. 하지만 그에게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이유를 알고 싶어 안철수의 생각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했다. “국민이 자신을 필요로 하는지 묻고 있다. 인기가 거품인지 알아보고 싶은 것이다. 솔직하게 평가해 달라는 것이 무슨 문제인가. 한국 정당에 대한 부정적 시각도 옳다고 본다. 여당은 정권에 의해, 야당은 대통령병 걸린 지역 지도자에 의해 이합집산했다. 기존 정당 정치문화는 바뀌어야 한다.”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복지·정의·경제민주화에 대한 안 원장의 생각이 한쪽에 쏠려 있단다. “일은 상황을 따져 봐야 하고, 매사엔 쌍방이 존재한다. 요즘 급박하게 돌아가는 국내외 경제상황을 보면 차기 대통령은 운이 좋지 않다. 1997년 외환위기보다 더 심각한 세계경제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 국민 대부분이 좋아할 정책은 여유 있을 때나 통한다. 방만한 복지로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준다고 하면, 기존 정치인과 뭐가 다른가. 국민에게 허리띠를 졸라매는 고통을 감내해 달라고 호소할 때다.”

대기업 정책에 대한 조언도 했다. “재벌은 협력업체 관계 등에서 분명 문제가 있다. 그렇다고 경제의 어려움이 재벌이나 대기업에서만 비롯됐나. 외환위기는 재벌뿐 아니라 금융회사와 대기업 노조 탓도 있다. 어느 한쪽만의 잘못이 아니다. 비정규직이 왜 생겼나. 정규직 노조의 기득권을 지켜주면서 노동유연성을 높이려다 보니 나온 기형적 정책이다. 눈치 볼 것 없는 안 원장은 좋은 얘기만 하지 말고, 정규직 노조에 쓴소리도 해야 한다.”

강 위원은 안 원장에게 글로벌 경제 공부를 많이 해 줄 것을 당부했다. “우물 안 개구리 식 경제정책은 곤란하다. 동아시아권을 묶는 경제블록 대계(大計)에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동아시아 경제시대가 온다. 큰 흐름을 탈 큰 정책이 필요하다.”
 
벤처 1세대 대표주자, 조현정
1일 서울 강남역 인근 비트빌딩 6층. 조현정 회장은 기자에게 “정치권 요청으로 잠시 정치 혁신(여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 일을 봤을 뿐이다. 안철수 박사에 대해 특별히 할 얘기가 없다”며 정식 인터뷰를 고사했다(그는 ‘안 박사’라고 줄곧 불렀다). 그러면서도 “안 박사가 벤처 구루로 남는 것이 국가에 더 도움이 될 텐데…”라며 안타까워했다. 여러 해 전에 최태원 SK 회장 구명 탄원서에 안 원장이 서명한 일이 논란이 되는 데 대해 “새누리당이 별일 아닌 것을 침소봉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당시 일을 후회한다”는 안 원장의 반응에도 아쉬움을 표했다. “그게 무슨 잘못이냐”는 이야기다.

안철수의 생각은 주변에서 구한 요약본을 읽어봤단다. “책을 보니 정치에 나설 것 같다. 벤처업계의 훌륭한 구루를 잃지 않을까 아쉽다”고 했다. 왜 안철수의 정치참여를 반대할까. “지난해 서울시장 후보로 나설 때 안 박사가 비판했던 정치판이 많이 바뀌고 있다. 안 박사의 역할이 컸다. 여나 야나 혁신 중이다. 이제 한발 물러나 지켜볼 때다.”

책 내용에 대해선 유보적인 입장이다. “좋은 얘기들이다. 정치인이라면 다들 하는 말이다. 안 박사에 대한 신뢰가 크니 더 그럴듯하게 보일 뿐이다. 그런데 정치는 교과서가 아니더라. 모든 일이 생각대로 이뤄지면 어느 정치인이라고 못하겠나. 현실과 이상은 다르다.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이기지 못한다. 균형 있는 정책으로 양쪽 모두를 설득해야 한다.”

‘정치인 안철수’는 반대했다. “안 박사는 젊은 층에 인기가 높다. 깨끗한 이미지 때문이다. 늘 듣기 좋은 얘기만 한 것도 한몫했다. 청년실업의 화살을 나라와 정치권·기업에만 돌린다. 젊은 세대는 피해자라고 강연한다. 남 탓만 하는 것이다. 청년들에겐 얼마나 듣기 좋은 얘기인가. 그는 정치인 못지않은 대중정치를 하는 셈이다. 좋은 강연은 쓴 약이어야 한다. 청년들을 만날 때는 더 열심히 노력하라고 일침도 줘야 한다.”

조 회장은 올해 초 여당 비대위에 참여할 때 ‘정치판에서 한자리 하려 한다’는 주변의 비판도 들었다. 그는 “정치판을 바꾸는 데 일조하겠다는 순수한 의도였지만 세상은 좋게 봐 주지 않더라. 당초 약속대로 본업으로 돌아와 정치색을 뺐다”고 말했다. 안철수도 그런 시선을 의식하라고 했다. “정치인은 권력과 봉사 두 목표를 향해 뛴다. 안 박사도 봉사를 위해 정치혁신을 얘기했다. 정치판에 직접 끼어드는 모습은 권력의 탐욕으로 비칠 수 있다.”

‘인간 안철수’와 ‘벤처인 안철수’에 대해서는 칭찬했다. “안 박사는 주변에 흔들리지 않고 사업을 한 사람이다. 벤처업계에서도 생각이 다른 경영자와는 거리를 뒀다.” 안 박사가 2000년대 중반부터 회사를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미국 유학을 떠나 그를 개인적으로 아는 벤처기업가가 적다고 했다. 특히 결벽주의 스타일로 벤처 1세대 중에서도 안 박사와 가깝게 지낸 사람은 많지 않다고 했다.



강봉균 1990년대 경제 각료를, 2003년 이후 지난 5월까지 열린우리당·민주당 등에서 국회의원을 세 차례 지냈다. 서울대 상과대를 나와 행시 6회(1969년)로 관료생활을 시작했다.

조현정 집안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를 중퇴한 뒤 주경야독으로 인하대 공과대에 들어갔다. 1983년 재학 중 비트컴퓨터를 창업했다. 2005년부터 2년간 벤처기업협회장을 지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