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상할머니 전재산 5억원 대학 기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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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를 지으며 혼자 사는 70대 할머니가 전 재산을 장학기금으로 내놓았다.

박일분 (朴一粉.73.경북 상주시 낙양동) 씨는 23일 밭 66평.논 4백80평과 자신이 살고 있는 27평짜리 단독주택을 상주대학교에 장학기금으로 맡겼다. 시가로는 5억원 상당. 지난 50여년간 피땀흘려 모은 전 재산이다. 지목 (地目) 은 논과 밭이지만 실제는 상업지역으로 도심의 노른자위 땅이다.

朴씨는 "어렵게 모은 재산을 보람있게 쓸 방법을 찾다 장학금으로 기증하는 것이 가장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고 말했다.

상주에서 태어난 그는 열일곱살 때 결혼했지만 얼마 후 남편이 "돈을 벌어오겠다" 며 일본으로 떠나 소식이 끊겼다. 이 때부터 아들 둘을 키우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불행은 계속됐다. 한국전쟁 때 인민군의 폭격으로 두 아들마저 잃었던 것.

"내가 무슨 낙이 있었겠소. 고통을 잊기 위해 이를 악물고 일만 했지. "

날품팔이.노점상.행상 등 갖은 고생을 하며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살 만해진 뒤에도 일을 놓지 않았다. 고된 일을 한 탓에 다리에 관절염이 생겨 거동이 불편했지만 얼마전까지 집 텃밭에 채소를 심어 시장에 내다 팔았다.

그는 "학교에도 못가본 채 저 세상으로 떠난 아들 생각이 나 장학금으로 쓰기로 했다" 며 "얼마되지 않는 돈이지만 생활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보탬이 됐으면 좋겠다" 는 바람을 덧붙였다.

상주대 (총장 金基卓) 는 할머니의 호를 '봄처럼 온화하고 선비처럼 아름답다' 는 뜻의 '춘언당' (春彦堂) 으로, 장학재단 명칭을 '춘언당 박일분 장학금' 으로 정하고 다음 학기부터 매년 20명을 선발해 장학금을 지급할 계획이다.

金총장은 "자손이 없는 朴씨를 위해 최근 학교 뒷산에 장학후원동산이란 이름의 묘소를 마련했으며, 사후엔 제사를 지내 보은 (報恩) 하겠다" 고 밝혔다. 상주대는 기증식이 열리는 24일엔 감사의 표시로 朴씨와 친구 50여명을 초청해 잔치를 열기로 했다.

상주 = 홍권삼 기자hongg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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