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시카고의 두 구단, 컵스와 화이트삭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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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서부의 전통적인 중심지이자 3번째 대도시이며, 5대호 중 하나인 아름다운 미시간호수를 자랑하는 일리노이주 시카고는 비교적 안전한 편이며 한국 교민 수도 10만명 가량 된다. 그때문에 시카고는 중서부에서 유학하는 한인학생들이 빈번하게 방문하는 장소이다.

시카고에는 한국 야구팬들에게 잘 알려진 2개의 메이저리그 팀, 화이트삭스와 컵스가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양팀의 팬들이 양분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물론 화이트삭스는 아메리칸리그이고 컵스s는 내셔널리그 팀으로서 팬들이 나눠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이들 구장의 지정학적 위치 때문이다.

컵스의 리글리필드는 100여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구장인데, 한국 교민들이 밀집한 상권에서 약 10분 정도 떨어진 애디슨 스트리트에 위치하여 북부 시카고의 팬들을 사로잡고 있다. 마치 과거에 서울의 동대문운동장에 고교야구를 보러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듯한 시설인데도 불구하고 구장은 연일 만원이다. 한편 화이트삭스의 코미스키 파크는 사학명문인 시카고대학의 남쪽에 위치하여 남부 시카고지역 팬들이 대다수이다. 시설은 리글리필드보다는 훨씬 깨끗하며 주차시설도 잘되어 있다.

그런데, 시카고지역에서 부촌이라고 할 수 있는 에반스턴 등의 지역들의 주민은 백인들이 대다수인 반면에 남쪽은 흑인들이 많이 산다. 따라서 시카고의 전통적인 야구팬들은 북부와 남부로 분류되면서 대부분의 백인들은 성적과는 무관하게 컵스의 충실한 팬이 되고 있다. 특히 컵스의 팬들은 극성맞은 팬들이 매우 많다. 작년 시즌 LA 다저스와의 경기에서 술취한 관중이 다저스의 포수 채드 크루터를 폭행한 사건은 아직도 생생하다.

필자가 리글리필드에 가서 야구를 볼 때 느꼈던 점은 타 미국 구장들과는 달리, 컵스가 아닌 다른 팀을 응원하면 제대로 경기를 관람하기 힘들 정도로 주변 팬들의 눈총이 따갑다는 사실이다. 또한 컵스팬들의 이상하면서도 배타적인 전통은 상대 팀 선수가 친 공이 홈런이 되었을 때 그 공을 갖지 않고 다시 구장 안으로 던져버린다는 것이다.

시카고와 일리노이주 뿐만 아닌 미국의 많은 백인들이 컵스를 사랑하는 또다른 이유는 WGN 방송사가 컵스 경기를 미국 전역에 독점 중계해줬기 때문이다. 그러나 1997년 컵스의 아나운서였던 해리 커레이의 사망으로 컵스의 팬들이 슬픔에 빠지자, 구단주이자 WGN 방송사의 고문인 앤디 맥파일은 커레이의 손자인 칩 커레이(당시 35세)를 해설가로 승격시켰다. (재미있는 사실은 해리의 아들이자 칩의 아버지인 스킵 커레이는 테드 터너가 구단주인 TBS 방송의 애틀란타 브레이스브스 해설가다.)

1997년부터 인터리그제도가 도입되면서 화이트삭스와 컵스의 경기가 시작되었는데, 시카고 팬들은 이 게임을 '남북대결'이라고 칭한다. 그런데 이렇게 남북대결의 양상을 이루는 야구팬들에 몇 가지 변화가 생기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가장 중요한 이유는 화이트삭스가 2000년 시즌에 급성장했기 때문이다.

일리노이 대학의 신문인 '데일리 일리노이'의 사설에는 화이트삭스가 기록한 작년 시즌의 놀라운 승률을 가리키면서 '아무도 바꾸지 말고 이대로만 가자'고 했다. 하지만 작년에 지적된 왼손 투수 보강을 위해서 토론토에서 데이빗 웰스를 데려왔고,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서 샌디 알로마 주니어도 데려왔다.

그러나 화이트삭스는 부진한 출발을 보이고 있다. 오히려 전력이 보강된 올해에 부진은 작년에 신인들로 똘똘 뭉쳤던 팀 분위기의 와해라고 보고 싶다.

한편 컵스는 올해 시즌 비교적 마운드에서 카일 판스워스가 안정된 투구를 해서인지 좋은 승률을 보이고 있지만, 시카고 백인의 우상이었던 마크 그레이스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로 내보낸게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

그래도 열성 팬들은 묵묵히 기다린다. 언젠가 두 팀이 월드 시리즈에서 맞붙을 날을 말이다. 마치 한국팬들이 플레이오프에서의 박찬호가 투구할 날을 기다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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