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 시해 사건의 진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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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종의 〈명성황후〉(현대문학북스)는 명성황후의 삶과 시해 사건의 전후를 생생하게 복원한 다큐멘터리 소설이다.

이 소설은 2년 전 나온 〈새롭게 읽는 명성황후 이야기〉의 일부 내용을 손질한개정판으로, 사료 위주로 구성된 초판과 달리 소설적 요소가 많이 추가됐다.

물론 요즘 공분을 촉발하는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도 개정판 출간의 동기다.

저자가 서문에서 말하듯 소설은 명성황후 시해의 배후가 일본 국가 권력이었다는 사실을 밝히는 데 주력하고 있다.

실제 주범들은 현장에 있던 한낱 사무라이 낭인들이 아니라 대부분 일본의 고학력 지식인이자 국가 정책의 주요 입안자들이었으며, 이들은 식민지 건설의 가장 큰걸림돌이었던 명성황후를 제거해야만 했다는 점을 각종 사료를 통해 밝혀낸다.

소설은 흥선 대원군의 등장과 대원군-명성황후 갈등, 그리고 거세지는 외세의침탈과 개화파의 3일천하, 청일전쟁 등으로 전개되다가 마지막 부분에 가서 명성황후의 최후 부분을 다뤘다.

목격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재구성한 당시 상황은 참혹하다. 내전을 기습한 낭인들은 왕비와 궁녀들의 머리채를 잡아 끌어 일본도로 난자한다. 왕비의 얼굴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탓에 얼굴이 비슷한 궁녀들도 무참히 살해한다. 그리고 석유를 끼얹은 장작 더미에 시신을 올리고 불태워 버린다. 1895년 8월 20일 새벽의 일이다.

소설은 또 시해에 연루된 일본인들의 사후 행로도 주목한다. 이들은 잠깐 수감됐다 증거불충분으로 이내 석방됐으며 일본내에서 대대적인 환대를 받았다.

미우라 고로 공사의 경우 직위가 박탈되긴 했지만 그 뒤 추밀원 고문으로 추대됐고 스기무라 서기관, 아다치 『한성신보』사장 등 다른 가담자들도 정당 총재, 육군대신, 고위 외무관료 등으로 영화를 누렸다.

시해에 가담했던 조선인 우범선, 이두황 등은 일본으로 망명하지만 이중 우범선은 조선 정부가 보낸 자객에 의해 암살된다. '씨없는 수박'의 주인공 우장춘 박사가그의 아들이다.

고아로 외롭게 자라 16세에 왕비가 된 뒤 30여년간 궁궐을 지키다 처참한 최후를 마친 명성황후. 이 소설에서 그는 열강의 침략 앞에 무기력할 수 밖에 없었던 시대 상황을 직시하고 지략을 발휘한 탁월한 국가 경영자이자 여걸의 모습으로 부각돼있다. (서울=연합뉴스) 이성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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