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 ‘마의 금정터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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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27일 KTX열차가 1시간 동안 멈춰선 뒤 국내 최장(20.3㎞) 금정터널의 안전 문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KTX가 금정터널 안에서 고장 난 것은 이번이 다섯 번째다. 지난해 3월에는 부산발 열차가 터널 내 언덕 구간을 오르다 엔진 출력이 떨어지며 20여 분간 멈춰 섰다. 전기량을 조절해 열차 바퀴를 움직이는 핵심 부품인 모터블록 고장이 원인이었다. 4, 6월에는 신호기 이상으로 10여 분간 열차가 정차했다. 2010년 11월 개통 전 시운전 때도 모터블록 고장으로 정차사고가 있었다.

 금정터널에서 정차사고가 잦은 이유에 대해 한 코레일 관계자는 “굴곡·구배(勾配·경사) 구간이 많아 차량에 무리를 주는 듯하다”고 말했다. 금정터널은 금정산을 관통해 부산 동구 초량동과 금정구 노포동을 잇는다. 구불구불 휜 곡선 형태의 노선은 8번이나 꺾어지며 지하 50~350여m를 9번 오르내린다.

 철도시설공단의 이수영 고속철도처장은 “터널 구조가 차량 고장에 원인을 제공했을 것이란 추측은 기술적 근거가 없는 얘기”라고 주장했다. 이 처장은 “금정터널은 일반적인 터널의 굴곡·구배 기준을 준수해 설계됐다. 터널 길이가 길다고 별도의 기준을 적용하는 경우는 없다”고 말했다.

 터널 내 정차사고가 발생했을 때 승객 대피공간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입·출구의 구난대피소는 면적이 400㎡다. KTX 1편성 승객·승무원 정원이 935명인 점을 감안하면, 1명당 면적이 0.4㎡에 불과하다. 민방위 기준인 1인당 0.8㎡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금정터널을 두 번 들어가 본 부산시의회 김선길 의원은 “터널 내 정차사고가 대형참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부족한 대피 시설을 늘리고 정차사고 대처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금정터널에 대한 우려가 이어지면서 코레일 정창영(58) 사장은 30일 현장을 찾아 내부를 둘러봤다. 올 2월 취임 이후 처음이다. 코레일은 31일 이번 사고에 대한 종합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코레일은 27일 정차사고의 원인이 기관차 보조블록 고장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보조블록은 모터블록 냉각용 송풍기, 객실 냉난방 장치 등에 전력을 공급하는 장치다. 2개가 한 쌍이고 평소에는 1개만 가동되는데 고장이 나면 다른 1개가 자동 가동된다. 하지만 사고열차는 서울역을 출발한 지 10분 만에 보조블록 1개가, 금정터널 안에서는 나머지 1개도 고장 났다. 코레일 측은 “보조블록 2개가 다 고장 난 것은 2004년 KTX 개통 이래 처음”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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