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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회사 합병해 지배구조 투명하게 … 2014년 상장 목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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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충북 천안시 ㈜삼신 공장에서 김종배 대표가 직원들과 함께 생산 중인 원자력발전소용 밸브를 점검하고 있다. 무게가 보통 1t이 넘는 이 밸브는 원자력발전소 1기당 수백 개가 설치된다. 왼쪽부터 김 대표, 생산부 강은숙 대리, 이성용 사원, 이철희 전무. [서계호 인턴기자]

2010년 4월. 잘나가던 발전소용 밸브 제조업체 ㈜삼신에 비상이 걸렸다. ㈜삼신에 210억원을 빚진 A건설사가 법정관리를 신청했기 때문이다. ㈜삼신은 2006년 공장을 이전하면서 기존에 소유했던 부지를 420억원에 A사로 넘겼다. 계약금 42억원과 중도금 168억원은 받았지만 잔금 210억원은 나중에 받기로 했다. “매각 대금의 절반은 나중에 갚는 대신 가격을 더 쳐주겠다”는 A사의 제안을 덥석 받아들인 게 화근이었다.

 ㈜삼신 이철희 전무는 “제품 수주가 계속 늘어 사업을 확장하던 상황이었는데, 예기치 못한 채무 문제로 자금 계획이 엉망이 됐다”며 “처음 겪어보는 일이라 오랜 기간 거래해온 기업은행에 자문을 구하게 됐다”고 말했다.

 기업은행에선 변호사를 보내 A사와 체결한 계약 서류를 꼼꼼히 들여다봤다. 불행 중 다행으로 A사에 넘긴 부지에는 170억원의 근저당이 설정돼 있었다. 하지만 A사가 부동산 사업을 진행하면서 저축은행에서 빌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금 100억원도 함께 근저당이 잡혀 있었다. 해당 저축은행은 경영 부실로 퇴출돼 이 PF 채권은 현재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에 넘어간 상황이다. 오현일 변호사는 “캠코는 조속한 자금 회수가 목적이라서 해당 부지를 경매에 부칠 가능성이 크다”며 “경매로 넘어가면 시세보다 헐값에 팔리기 때문에 빌려준 금액을 다 받지 못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업은행은 출구전략을 내놓았다. 이미 받은 210억원으로 A사의 PF 대출금 100억원을 대위변제(代位辯濟)하고, 이 금액의 상환을 A사에 요구하라는 것이다. 이 경우 ㈜삼신이 사실상 해당 부지를 소유하게 돼 경매로 넘어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A사가 법정관리를 졸업하면 잔금 회수도 가능하다. 또 받은 금액 중 계약금 42억원은 위약금으로 몰수하고, 기타 비용 등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하면 시간은 좀 걸리더라도 손해를 보진 않는다는 판단이다.

 오 변호사는 “금전 대차 거래 때 근저당만 설정하면 돈 떼일 염려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며 “중소기업은 법률지식이 부족한 만큼 계약서 작성 때부터 각종 조건과 변수 등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삼신은 원자력·화력 발전소에 들어가는 밸브를 생산하는 기업이다. 이 밸브는 방사능 유출을 막고, 고온·고압을 견뎌야 하기 때문에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삼신은 1966년 창사 이래 오로지 밸브 생산과 기술 개발에만 힘을 쏟았고, 발전소용 밸브 시장 세계 3위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현재 국내에서 가동 중인 모든 원전에는 ㈜삼신의 밸브가 들어가 있다. 2006년에는 프랑스·독일 등 내로라하는 다국적 기업을 물리치고 중국 원전에 밸브를 납품하는 등 아랍에미리트(UAE)·일본·대만 등 해외에도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다른 기업처럼 ㈜삼신도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와 2000년대 초반 고철 파동 때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부터 원자력 관련 산업이 급성장하면서 ㈜삼신의 밸브는 요즘 없어서 못 팔 정도다. 덕분에 최근 3년 평균 매출액 735억원, 평균 영업이익 68억원의 성과를 이뤘고 증시 상장을 준비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삼신이 기업은행 컨설팅부에 문을 두드린 또 다른 이유다. 하지만 기업은행 박현수 회계사는 “수익성이나 성장성·기술력 등은 흠잡을 데 없지만, 깐깐한 상장 심사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보완할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삼신의 발목을 잡은 것은 우선 부채비율이다. A사로부터 받을 돈 등이 부실채권으로 분류되면서 부채비율이 170%에 이른다. 섣부른 계약 체결이 기업 경영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하지만 기업은행의 조언을 따른다면 부채비율은 50%로 낮아질 전망이다.

 지배구조도 상장을 위해선 개선해야 할 과제다. ㈜삼신은 현재 4개 자회사를 보유하고 있는데, 내부 거래 의존도가 높다. 기업은행은 불필요한 자회사는 흡수합병해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높일 것을 권했다. 상장사가 의무적으로 갖춰야 하는 국제회계기준(IFRS) 도입을 위해 인력·조직을 확충하는 것도 시급하다. IFRS 도입이 늦어지면 기업의 상황을 반영한 재무제표 작성이 어려워지고, 외부적으로도 재무정보의 신뢰성이 떨어지게 된다.

 이와 함께 기업은행은 신규 사업 투자자금은 은행권에서 빌려 충당하기보다는 제3자 유상증자나 창투사 투자를 통해 확보할 것을 주문했다. 박 회계사는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활성화시키고, 내부 감사제도를 강화해 지배주주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일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삼신은 바로 개선작업에 착수했다. 이철희 전무는 “해결이 시급한 단기 과제부터 장기 핵심 과제까지 어디에 우선순위를 둘지 정리가 됐고, 앞으로 어떻게 경영을 해야 할지 큰 그림이 그려졌다”며 “2014년 상장에 차질이 없도록 철저히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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