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취업 성공시대 ⑤·끝 이종석 SK C&C 과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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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C&C 이종석 과장이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있다. 그는 신기술 개발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해내 올 초 과장으로 승진했다. [오종택 기자]

2003년 고려대 컴퓨터학과를 졸업하고 1년간 20군데도 넘게 입사 면접을 봤다. 서류전형과 필기시험에선 떨어져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면접에만 가면 여지없이 미끄러졌다. 친구들은 졸업과 거의 동시에 취직을 했는데도 그랬다. ‘이러다 영영 사회 진출은 물 건너가는 게 아닐까’ 싶은 불안감에 중소기업이나 생산공장 사무직까지 가리지 않고 입사 지원서를 냈다. 하지만 결과는 늘 마찬가지였다. 이유는 하나, 장애 때문이었다.

SK C&C 이종석(34) 과장은 대학 졸업 후 구직 활동을 하던 1년여를 이렇게 기억했다. 사실 이 과장의 장애는 그다지 심한 편이 아니다. 뇌병변으로 똑바로 걷지 못하지만 그냥 서 있을 때는 이런 사실을 눈치채기 어렵다. 말할 때 얼굴이 일그러지고 발음이 부정확한 편이긴 하다. 그래도 프레젠테이션을 할 정도로 의사소통엔 문제가 없다. 이 과장은 “중증 장애가 아니고, 학창 시절에는 불이익을 받아본 적이 없었는데 일자리를 찾으면서 벽을 절감했다”고 말했다.

 이런 적도 있다. 경기도 안산에 위치한 공장에 면접을 보러 갔다. ‘아무리 공장이라지만 면접인데’ 하는 마음에 넥타이까지 갖춰 매고 갔다. 하지만 정작 인사담당자는 이 과장을 훑어보더니 몇 가지 묻지도 않고 돌아가라고 했다. 당연히 채용되지 못했다.

 “이게 장애인 취업의 현실입니다. 경증 장애인이라고 해도 같이 일하고 싶어 하지 않죠. 뭐가 불편하다 꼬집어 말하지 못하면서도 막연한 거부감이 있는 겁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었다. 부모님께 기대 살 형편이 아니었다. 정보기술(IT) 개발자로 일하고 싶었는데, 그러려면 기업에 들어가야 했다. 1년만 해보고 안 되면 공무원 시험을 보기로 하고 버텼다.

 왜 면접에서 떨어질까. 발음이 문제다 싶었다. 말이 어눌하다 보니 상대방은 자신을 더 중증 장애인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볼펜을 입에 물고 매일 발음 연습에 매달렸다. 긴장하면 더 심하게 일그러지는 표정을 바로잡으려고 거울 앞에 서서 웃는 연습까지 했다.

 노력은 열매를 맺었다. 2004년 SK그룹 공채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입사에 성공한 게 다가 아니었다. 1년 넘게 제대로 된 프로젝트에 합류하지 못했다. 입사 동기들이 사업 프로젝트에 속해 일하는 동안에도 그에게는 사내 웹페이지 관리와 복사·제본 같은 단순 업무만 주어졌다.

 “동료들도 반신반의한 것 같아요. 제가 할 수 있을까 하고 말이죠. 별것 아닌 업무라 해도 주어진 건 완벽하게 완수하면서 기회를 기다렸습니다.”

 1년 뒤 그는 ‘스마트카드’ 프로젝트에 합류했다. 신용카드에 IC칩을 내장해 무선 인터넷을 통해 결제할 수 있게 하는 일이었다. 신용카드를 ‘긁지’ 않고 단말기에 갖다 대기만 하면 결제할 수 있는 기술이다. 이 과장은 이 시스템이 구동되는 기반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업무를 맡아 5년을 일했다. 지난해 이 기술을 적용한 칩이 팔리면서 그는 올해 초 과장이 됐다. 입사 8년 만에 입사 동기들과 엇비슷하게 승진한 것이었다.

 이 과장은 힘들 때면 늘 떠올리는 인물이 있다고 했다. 소아마비로 인해 다리가 불편했을 뿐만 아니라 지적 장애까지 가지고 있던 포레스트 검프다. 영화의 주인공이자 실존 인물인 바로 그 검프다. 검프는 베트남전에 참전했다가 탁구선수로 이름을 날렸고, 전쟁이 끝난 뒤 고향으로 돌아와 애플에 투자해 부를 거머쥐기도 했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면 이 과장은 그저 묵묵히 제 갈 길을 갔던 검프의 삶을 되새긴다.

 “취업을 꿈꾸는 장애인들이 있다면 절대 포기하면 안 됩니다. 우리가 성공해야 어린 친구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니까요.”

조혜경 기자

이종석 과장 2003년 고려대 컴퓨터학과를 졸업하고 2004년 SK C&C에 입사했다. 경증 장애인임에도 졸업 후 1년여간 번번이 면접에서 고배를 마시며 백수로 지냈다. 입사 후에도 1년 넘게 프로젝트에 합류하지 못한 채 힘든 시기를 보냈다. ‘지금 내가 포기하면 더 어린 친구에겐 아예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버텼다고 했다. 이 과장에겐 1년가량 교제해 온 비장애인 여자친구가 있다. 그는 “이제 결혼해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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