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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진의 서핑 차이나] “김정은의 북한은 개혁·개방 막 시작한 중국과 유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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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의 북한은 개혁·개방 막 시작한 중국과 유사”
-‘한중수교 20주년과 한중협력’ 세미나 참석한 주펑(朱鋒) 베이징(北京)대 국제관계학원 교수 주장

“북한 대선 이전 도발할 가능성 낮다”
“미국은 아시아 지역 ‘힘의 공유’ 아닌 한·일의 ‘비용 공유’ 요구할 것”
“북한을 동아시아 경제체제로 끌어내기 위한 환발해 클러스터 구축 필요”

“김정은의 북한은 개혁·개방을 막 시작한 1979년 초반의 중국과 유사하다.”
한반도 전문가인 주펑(朱鋒) 베이징(北京)대 국제관계학원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지난 18일 서울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 중회의실에서 GK전략연구원(이사장 배정호 통일연구원 통일정책연구센터 소장)이 ‘한중수교 20주년과 한중협력’을 주제로 연 국제세미나에 참석해 이같이 강조했다.

주 교수는 그 근거로 4월 19일자 북한 노동신문에 실린 김정은의 “경제와 관련된 모든 문제를 내각에 집중하고 내각의 통일된 지휘에 따라 결정할 것”이라는 발언을 제시했다. 북한에는 국민경제를 담당하는 내각의 ‘제1경제위원회’와 함께 선군정치를 위한 경제 지원을 담당하는 국방위원회의 ‘제2경제위원회’가 존재한다. 김정은의 발언은 군부의 경제활동을 제한하겠다는 선언이라는 것이다. 1998년 뒤늦게 군부의 비즈니스 활동을 전면 금지시킨 중국과 닮은꼴이다.
주펑 교수의 발표문은 다음과 같다.

김정은은 “우리의 규율과 질서를 확립하여 경제와 관련된 모든 문제를 내각에 집중하고, 내각의 통일된 지휘에 따라 결정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다른 나라에서는 정부와 총리가 국가의 전반적인 경제를 담당하는 것이 매우 정상적이고 일반적인 일이다. 그러나 북한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는 것은 그냥 넘길만한 보통 일이 아니다.

북한의 정치구조 속에는 사실상 두 개의 ‘경제위원회’가 존재한다. ‘제1경제위원회’는 내각이 이끌며 국민경제를 담당한다. ‘제2경제위원회’는 국방위원회가 이끌며 선군정치를 추진하기 위한 경제적 지원을 담당한다. 대외무역, 대외경제협력, 채광, 해양어업 등 외화를 벌 수 있는 모든 부문이 제2경제위원회의 관할 아래 있다. 그렇기에 예로부터 지금까지 제1경제위원회는 행사할 수 있는 권력과 재정에 늘 한계가 있어 국민경제 방면의 성적이 두드러지지 못했다.

만약 향후 김정은의 이러한 계획이 현실화된다면, 이는 북한 내각과 제1경제위원회의 권력과 책임이 전에 없이 확대되고 강화됨과 동시에 재력과 물력을 보유하고 운용할 권한이 보장됨을 의미한다. 김정은의 이 발언은 북한 내부 체제 변혁의 ‘서곡’인 것이다.

주 교수는 또한 12월 한국의 대선 이전에는 북한이 군사도발을 일으킬 가능성이 작다고 전망했다. “군사도발은 보수정권이 집권하는 데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새로 들어설 정권과의 접촉 또한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즉, 김정은 정권은 국내외적으로 ‘헌법상의 핵 보유’를 강조하면서도 정책의 우선순위는 경제발전에 둘 것이다. 개혁·개방 초기의 중국과 김정은의 북한이 닮았다는 이유다.

이날 발표에 이어 한국 안보 전문가들과의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주펑 교수는 북한의 변화에 대한 중국의 입장을 묻는 질문에 “북한의 개혁개방은 중국의 이익에 부합된다”고 답했고, 북한 선군정치의 전망을 묻는 질문에는 “선군정책은 결국 중국과 같이 당의 군부 통제 형태로 나아갈 것”이라고 답했다. 이에 덧붙여 북한은 ▶선군정치와 경제발전, ▶핵 억지력과 대외 관계 개선이라는 균형점을 어떻게 찾아내느냐는 도전에 직면해있다고 말했다. 주펑 교수는 “북한은 매우 똑똑하다”며 “힘이 약해진 북한이 이를 무시하고 도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핵문제의 최종 해결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양시위(楊希雨) 중국국제문제연구소 연구원은 “북한으로서는 핵을 포기한 이후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 것이 문제”라며 “리비아 카다피의 케이스를 유심히 관찰한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전하고, 포기하면 전망이 없다고 여기고 있으므로, 북한이 핵을 가지면 붕괴하고 버리면 번영한다고 체감할 수 있도록 합리적인 틀을 구축하는 것이 선결 문제”라고 대답했다. 1분과의 사회를 맡은 황재호 한국외대 교수는 “한반도의 안정은 내부 사정 못지않게 주변 환경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반도와 주변 4강 모두에 새 지도부가 등장하는 2013년이 한반도 운명에 이정표를 찍는 한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진 2분과에서 ‘동북아 평화 발전을 위한 한·중 협력 방향’이란 주제 발표에 나선 쑨저(孫哲) 칭화(淸華)대 중·미 관계연구센터 주임은 한·중 간에 존재하는 ‘전략적 상호 의심’에 대해 우려했다. 한·미 군사동맹 강화, 한국의 반중(反中) 감정, 대만에 대한 유연한 접근 등 중국이 한국에 대해 느끼고 있는 불만을 모두 토로했다. 쑨 주임은 그러나 “양국의 핵심 전략 이익은 일치한다”며 ‘소통과 교류 강화’를 역설했다. 그는 “올 가을 등장하는 중국의 새 지도자가 만약 북한보다 한국을 먼저 방문토록 한다면 이는 큰 변화의 상징”이라며 “한국의 신임 대통령 역시 중국을 일찍 방문한다면 양국 관계 발전에 매우 좋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한반도 통일과 한중협력’를 주제로 발표한 이지용 국립외교원 교수는 ‘동북아 경제협력개발 공동프로젝트’를 제안했다. 상생적 통일경제환경은 먼저 구축해야 한다며 단절된 북한을 세계경제의 새로운 핵심성장동력인 동아시아의 경제통합으로 끌어 내는 환발해 클러스터 구축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한편 이날 토론에 나선 류췬(劉群) 중국 국방대 교수는 “중국은 북한을 완충지대로 삼지 않고 있다. 통일된 한반도가 중국에 위협이 될 것으로 믿지 않는다. 그러나 한·미 군사동맹은 통일 이후 재고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류 교수는 줄곧 중국은 한반도의 평화통일 지지한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쑨저 교수는 “북한의 불확실성에 대해 사전에 분명히 정의를 내리고 중국에 충분한 설명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국이 공감하는 상황에서 한국이 북한문제를 주도하는 것은 인정하지만 미국이 개입한다면 내정 개입에 해당한다”고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 이와 함께 유엔과 같은 다자체제를 구축해 한국이 책임을 맡으면서 통일문제를 주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이를 위해서는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며 개입이 잘못될 경우 시리아와 같은 내전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미국의 아시아 귀환에 대한 중국의 입장을 묻는 질문에 쑨저 교수는 “미국의 아시아 귀환은 아시아에 투자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한국과 일본의 돈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라며 ‘힘의 공유(Power share)’는 없이 ‘비용 공유(cost share)’만 원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날 마무리 발언에 나선 배정호 GK전략연구원 이사장은 “미·중의 틀이 아닌, 한·중의 시각에서 통일 문제를 볼 때 문제가 풀린다”며 “남북통일은 동북아 안정과 번영의 기회이며 한국뿐 아니라 중국에게도 새로운 기회”라며 인식의 전환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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