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갑, 남편은 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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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모님 때문에 못살겠어요. 수시로 찾아와 간섭하고. 처갓집 중심으로 모든 일이 돌아갑니다.”

“전셋집 하나 마련 못했다고 장인 장모까지 합세해 우리 집안을 무시해요.” “돈 못 버는 남편이 꼴 보기 싫대요. 아이들 때문에 이혼할 수도 없고….”

임상에서 심심찮게 듣는 얘기다. 아내가 결혼했다란 소설이 황당하다고 한다면, 트렌드를 잘 모르는 사람이다.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여자의 둘째 남편 노릇을 하거나, 헤어지자는 아내에게 매달리고 있는 남편들도 적지 않다. 전통적인 결혼 제도를 거부하는 여성은 많아지는데, 자기를 돌봐줄 아내가 필요한 남자들은 넘쳐나니 수요공급의 원칙에 따라 결혼생활에서의 갑을 관계가 역전된 셈이다.

물론 여전히 저임금을 받고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들과, 학대 받으며 사는 아내와 딸들도 많다. 여성 취업률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낮은데도 불구하고 한국 여성들이 남성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행복한 이유는 무엇일까. 요즘의 분위기를 한국이 신모계사회로 넘어가는 증거라며, 가부장제에 대항한 페미니즘의 승리라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따지고 보면 조선시대 초기만 해도 한국이 확실한 부계사회라고 볼 수만은 없었다. 양반이었던 율곡 이이가 어린 시절 외가에서 산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었고, 딸들도 섭섭지 않게 재산을 상속 받았다. 왜란과 호란을 겪으면서 남자의 숫자가 줄어들고, 지나치게 보수적인 예학에 치우치다 보니 극단적인 남아 선호 사상이 자리 잡았을 수 있다. 어찌 보면, 심리적으로 유약한 아들들을 보호하기 위해 시어머니들이 가부장제라는 무기로 며느리들을 억압한 것은 아닐까.
하지만 이제 모든 것이 젊은 사람들 위주로 돌아가는 사회라, 젊은 며느리 앞에 돈 없고 힘없는 시부모들은 꼼짝없이 항복할 수밖에 없다. 시댁이란 우군이 없는 상황에서 남편들은 마치 예전의 며느리들처럼 설움을 참고 살아가기도 한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자기를 보다 안락하게 만들어 준다는 보장이 없다면 결혼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있으니, 그나마 아내가 있는 게 낫다고 보는지도 모르겠다.

어찌 보면, 지금의 상황은 꼭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변화 같다. 육체노동으로 인해 남성이 우월한 경제적 가치를 갖고 있었던 전근대사회에 비해 부드러운 여성적 정신노동의 가치가 훨씬 더 인정받는 게 포스트 모던 사회가 아닌가. 가부장제를 포장했던 낭만적인 사랑에 목숨 거는 여성들의 숫자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아리스토파네스는 자기의 잃어버린 반쪽을 찾는 것이 사랑이라 했지만, 버나드 쇼는 광적이고 일시적인 망상으로 결혼하는 것뿐이고, 쇼펜하우어는 자기 닮은 아이를 낳기 위해 결혼하는 것이라 했다.

쓸데없이 소울메이트를 찾아 헤매거나 모성애로 휘둘리지 말라고 세뇌하는 어머니나 언니 멘토들이 많기 때문에 손해 보면서(?) 결혼생활을 계속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기도 한다. 반대로 남성들은 이제부터는 오롯이 자기 능력으로 아내를 붙잡아 둬야 하므로 힘이 부친다. 은퇴 후에는 상황이 더 나빠진다. 아내가 떠나갈까 이삿짐을 붙들고 있었더니, 짐까지 버리고 가더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이제 남성들이 이른바 정상적인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훨씬 더 노력해야 할 날이 온 것 같기도 하다.

이나미 정신과 전문의 융 분석심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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