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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게가 없는 예술’ 일찍이 주목한 비디오 아트 시조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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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0호 06면

1984년 1월 1일 아침, 사람들은 안방에서 신대륙을 발견했다. 뉴욕~파리~서울 등 8개 세계 주요 도시를 잇는 인류 최초의 위성 예술인 백남준의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 TV로 방영되던 순간이었다. 그 순간 어떤 신세계, 무궁한 창조력의 세계가 있다는 것에 대해 눈을 떴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게 벌써 28년 전 이야기다.

탄생 80주년 맞은 백남준

올해 2012년은 고 백남준에게 각별한 해다. 7월 20일로 그는 탄생 80주년을 맞았다. 또 그가 평생을 스승으로 여겼던 전위음악가 존 케이지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백남준은 말년의 병석에서도 “2012년까지 살아서 꼭 존 케이지의 100주년 기념 퍼포먼스를 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곤 했었다. 살아있었다면 그는 또 흥미로운 볼거리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인류 최초의 화가와 조각가가 누구인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나 비디오 아트의 창조자는 누구인지 확실하다. 백남준, 그야말로 비디오 아트의 아버지이자 조지 워싱턴이다.” 2006년 그가 작고했을 때 터져나온 예찬이다. 백남준은 과학-인간-미술을 늘 하나의 세트로 생각했다. 그의 예술세계는 행위예술, 비디오아트, 사이버네틱스, 레이저 아트로 이어지며 늘 새로운 장을 열어왔다. 그의 자유로운 사유는 당대 서구 지식인들을 넘어섰으며, 천재적인 예측에 도달하곤 했다. ‘바보상자’라 불리던 TV의 무궁한 가능성을 읽어내고, ‘종이의 죽음’을 예언했다.

1974년에는 이미 지금의 인터넷 같은 ‘전자 초고속도로’의 개념을 구상했다. 그는 자신의 시대를 넘어서는 21세기형 미디어 아트를 예측하고 있었다. 단군, 칭기즈칸, 마르코 폴로, 알렉산더 대왕 같은 유목의 제왕들이 동서양을 누볐던 것처럼 디지털 네트워크로 연결된 세상을 동과 서, 과거와 현대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사유의 경계를 해체하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 그가 말한 “우리 몸은 1㎝도 움직이지 않으면서 우리의 생각을 옮기는 것”은 이제 거의 실행되고 있지 않은가? IT 강국 코리아의 예술가 백남준은 “우리 민족은 오랫동안 유목민이었으며, 유목민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을 주어도 가지고 다닐 수가 없다. 무게가 없는 예술만이 전승되고 발전할 수 있었다”라고 말한다. 그가 말했던 미래의 무게가 없는 예술들은 젊은 예술가들에 의해 꾸준히 실험되고 있는 중이다.

수없이 인용되고 재해석되면서 20세기 내내 대중의 눈에 띄지 않게 미술계를 지배했던 두 명의 작가는 바로 뒤샹과 요제프 보이스였다.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매체가 일반화된 21세기에 가장 많이 인용되고 재해석될 예술가는 당연히 백남준이다. 1950년대의 파격적인 해프닝부터 일관되게 발전해 온 그의 예술적 사상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관건이다. 구겐하임 미술관 회고전에서 백남준이 보여주고자 했던 핵심이 한국 전통의 천지인 사상이었다는 것은 중요한 시사점이 될 것이다. 이 천재의 비밀을 풀어내는 것이 우리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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