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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서 몰려든 부자와 마르크스 묘지가 공존하는 런던은 매력적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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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올림픽은 도시 단위로 열린다. 고대 그리스의 전통을 근대에도 계승했다. 1주일 뒤인 27일(한국시간 28일 새벽)부터 다음 달 12일까지 영국 런던에서 제30회 근대올림픽이 열린다. 런던을 차분하게 살필 기회다. 이 도시는 부자에서 좌파 활동가까지 전 세계의 다양한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다.

 런던은 다문화 사회로 외국인 이주와 방문이 끊이지 않는 국제 도시다. 800만 인구 중 영국 출신 백인은 58% 남짓이다. 30% 이상이 유색인종이고 10% 정도가 외국계 백인이다. 런던 올림픽 조직위원장 서배스천 코도 인도계 혼혈이다. 최근엔 러시아·인도·중국·중동 부호들이 재산을 들고 이주하고 있다. 영국 10대 부자 중 8명이 외국계다. 더타임스의 일요신문인 선데이타임스가 지난 5월 발표한 결과다.

 프로축구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20개 팀 가운데 7개만 영국인 소유다. 9개 팀은 외국인이 주인이고 4개 팀은 합작이다. 부자들에게 관대한 세금, 경쟁력 있는 교육, 편리한 교통, 다양한 쇼핑, 다양한 유흥, 쾌적한 공원 등이 전 세계 부자들을 끌어당기는 힘으로 통한다. 이러한 런던의 매력은 영국 경제를 살리는 힘이다.

 영국 제1의 부자인 인도인 철강왕 락시미 미탈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집에 산다. 다이애나와 찰스 왕세자가 신혼생활을 하던 켄싱턴궁 근처의 담쟁이 넝쿨 휘감긴 저택이다. 켄싱턴궁 인근과 그 동쪽의 하이드 파크에는 공원과 산책로가 끝없이 이어진다. 누구나 돈 들이지 않고 거닐 수 있는 이런 거대 공공시설은 부자와 가난한 사람 사이의 심리적 간극을 좁히는 구실을 하지 않을까.

 런던은 사실 좌파의 성지다. 카를 마르크스가 생애의 절반을 보내며 『자본론』 등을 집필한 곳이다. 그의 무덤도 런던 북부 하이게이트 공동묘지에 있다. 거대한 마르크스 두상이 그 앞에 자리잡고 있다. 1995년 12월 런던에 처음 갔을 때 부슬비 내리는 이곳을 찾은 적이 있다. 두상 앞에 누군가 놓고 간 종이에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It’s time to call Marx(이제 마르크스를 부를 때다).” 칼이라는 이름을 불러낸다는 뜻의 영어 낱말 콜(call)로 운을 맞췄다. 놀라운 것은 이 영어 구절 밑에 한글로 ‘일하는 사람들’이라고 적혀 있었다는 점이다. 그날 마르크스 묘지에 단 하나 놓여 있던 헌정의 글은 한국인의 것이었다.

 마르크스의 묘지는 이젠 세계적인 관광지다. 아마 이번 올림픽 때 런던을 찾은 수많은 사람이 방문할 것이다. 추종하든, 경원하든 상관없이 역사 속 인물 마르크스와 마주할 것이다. 끔찍한 가난 속에서 세상을 원망했던 마르크스의 묘지와 전 세계에서 돈을 들고 모여드는 부자들의 저택을 동시에 볼 수 있는 런던은 그래서 더욱 찾을 가치가 있어 보인다.

글=채인택 논설위원
사진=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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