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급해진 농심배, 이세돌에게 SOS 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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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항전인 농심배 예선에서 한국 랭킹 1, 2위가 모두 탈락해 전력 누수가 우려되고 있는 가운데 이세돌 9단의 와일드카드 여부가 초미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세돌은 최강의 실력에도 농심배 영웅 이창호 9단이 아홉 번 와일드카드를 받는 동안 단 한 번도 받지 못했고 지난 열세 번의 대회 중 겨우 두 번만 국가대표로 출전했다. [사진 한국기원]

한·중·일 국가대항전인 농심신라면배 대표 선발전에서 한국 랭킹 1, 2위인 박정환 9단과 이세돌 9단이 탈락했다. 이 두 사람이 다 빠지면 대표팀은 약체가 된다. 이런 불상사에 대비해 ‘와일드카드’라는 제도가 있지만 카드는 단 한 장뿐이다. 과연 와일드카드는 누구에게 돌아가야 옳을까. 이 문제가 바둑계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이유는 이세돌 9단과 이창호 9단의 미묘한 관계 때문이다.

 이창호는 1999년 1회 대회 때부터 지난해 13회 대회까지 단 한 번도 대표선수에서 빠진 적이 없다. 선발전에 불참하거나 탈락하더라도 와일드카드는 언제나 항상 이창호의 몫이었다. 농심배에서 한국 팀 불패의 수문장으로서 무수한 전설을 남긴 이창호였다. 중국은 이창호 한 사람의 벽을 넘지 못해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농심 측은 “중국에서 워낙 인기가 높아 이창호 없는 농심배는 잘 상상이 안 된다”고 말하곤 했다.

이런 연고로 이창호는 무려 아홉 번 와일드카드를 받았다. 반면에 이세돌은 13번 대회 중 겨우 두 번 대표가 됐다. 선발전 불참이 두 번 있었지만 최정상의 실력을 감안하면 이 같은 연속 탈락은 엄청난 악연이 아닐 수 없다. 와일드카드는 한 번도 받지 못했다.

한국의 일인자가 됐음에도 농심배에서만큼은 왕년의 일인자 이창호에게 상대가 안 됐다. 이세돌 9단이 자존심에 상처를 입을 만한 대목이다. 올해 14회 대회에서도 이세돌과 농심배의 ‘악연’은 이어졌다. 대표선수 5명 중 4명을 뽑는 선발전 첫날(4일) 이세돌 9단이 무명의 새내기 김현찬 초단에게 157수 만에 불계로 져 탈락한 것이다.

이창호(左), 박정환(右)

당장 선발전 방식을 재고해야 한다는 팬들의 불평이 쏟아져 나왔다. 과거 한국이 절대 강자이던 시절엔 누가 대표가 되든 상관이 없었다. 한국은 농심배 13번 중 10번을 우승했다(중국 2회, 일본 1회). 그러나 이젠 중국이 강세이기에 랭킹 위주의 정예멤버로 구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졌다(지난해 중국은 주장 구리 9단을 남겨둔 채 우승하는 여유를 보였다).

 게다가 최근 이세돌을 제치고 랭킹 1위에 올라선 박정환 9단도 16일 김승재 5단에게 덜미를 잡혔다. 박정환은 아시안게임 때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따 병역을 면제받는 행운을 누렸다. 그러나 아직 단 한 차례도 농심배에 출전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올해 와일드카드는 누구에게 돌아가야 할까. 박정환이 랭킹 1위라지만 아마도 이세돌 9단일 것이다. 다행히 이창호 9단은 선발전에서 탈락하지 않고 결승까지 진출했다. 이동훈 초단과 20일 결승전을 두어 승리하면 자력으로 대표가 된다. 상대가 14세의 소년 기사라 부담이 클 것이다. 그러나 패배하면 더 골치아픈 와일드카드 논란이 기다리기에 이를 악물어야 한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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