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들 서류만 보고 돌아가 … 현장실사 더 엄격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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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르면 국가유공자 자활촌인 용사촌은 직접 운영하는 복지공장의 생산품에 한해 국가기관 등과 수의계약을 할 수 있도록 돼 있다. 하지만 이런 수의계약 제도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해 국가유공자의 자활 지원이란 취지가 무색한 실정이다. 유공자들은 이미 60대 후반부터 70대까지 노령화돼 있어 세월이 갈수록 용사촌의 회원 수는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또 복지공장 운영을 위한 지속적인 투자금도 충분치 않아 생산시설을 직접 운영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사정을 악용해 일반 업자들이 유공자 단체의 명의를 빌려 수의계약 사업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국가보훈처나 조달청 등 관계기관도 이런 현실을 알고 있지만 제도 보완이나 대안 마련에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오히려 보훈처 담당자들은 심씨 같은 명의대여 업자에게 ‘수의계약이 가능하다’는 내용의 허위 공문서까지 발급해 불법에 가담하기까지 했다. 보훈처 등 관계기관 공무원들은 매년 용사촌에 현장 실사를 나가 사업을 점검하고는 있다. 이와 관련, S용사촌 인쇄조합 관계자는 “공무원들이 현장 점검을 나오지만 형식적으로 서류만 대충 살펴보고 식사 접대만 받고 돌아간다”고 말했다. 보훈처 측은 “서류상 문제가 없어 불법 업자가 복지공장을 운영한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발뺌하기에 급급했다. 10여 년간 불법 업자가 공장을 운영했는데도 이를 몰랐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용사촌 수의계약 제도가 제대로 유지되려면 직접생산 여부에 대한 관계기관의 엄격한 현장 실사가 선행돼야 한다. 용사촌 여건상 직접 생산이 어렵다고 판단되면 외부 업자들이 제한 경쟁을 통해 계약을 하고 수익금의 일부를 의무적으로 단체에 기부하는 방식 등의 현실적 대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유공자 단체에 사업권을 보장하는 것보다 직접 지원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게 세금 낭비를 막고 실질적인 지원 효과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주통합당 김영주 의원은 "국민 세금으로 불법업자 배만 불린 꼴”이라며 “어떤 방식이든 수의계약 비리를 근절하는 동시에 국가유공자들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는 쪽으로 제도 보완이 시급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김보경 정보검색사

한국전쟁·베트남전 상이군경 자활촌 … 전국 28곳

◆용사촌=6·25전쟁과 베트남전에서 부상당한 상이군경이 집단 거주하는 자활촌이다. 전국에 28곳이 있고 적게는 7명에서 많게는 60여 명이 살고 있다. 총거주자 수는 가족 포함, 1600여 명이다. 정부는 국가유공자인 이들의 경제적 자립을 돕기 위해 정부와 공공기관 등에서 발주한 물품을 수의계약을 통해 납품하도록 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단 이들이 복지공장을 운영해 반드시 직접 생산해야만 수의계약이 가능하다. 현재 20개 용사촌이 복지공장을 운영 중이며 생산 물품은 모두 다르게 지정돼 있다. 지난해 중소기업청이 수의계약권을 가진 보훈복지단체 34곳의 ‘직접생산’ 위반 여부를 조사한 결과 27개 단체(S용사촌 인쇄조합을 제외한 용사촌 5곳 포함)가 하청·명의대여 형식으로 불법 운영된 사실이 적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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