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운터테너 모음집 '카스트라토의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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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트라토(castrato)란 변성기 전에 거세를 해소프라노나 알토 등 여성의 성역(聲域)을 갖게 된 남성 가수를 가리킨다. 여성이 대중 앞에서 노래를 부를 수 없었던 16-18세기 유럽에서는 교회음악이나오페라에서 여성의 역할을 소화하기 위한 이같은 카스트라토들의 활약이 두드러졌었다.

영화 '파리넬리'를 통해 많이 알려진 것처럼 당시 일부 카스트라토들은 오늘날 루치아노 파바로티나 안드레아스 숄같은 세계적 스타 성악가들과 같은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하지만 19세기 이후 교회는 이같은 비인간적 행위를 금했으며 오페라에서도 19세기 중반 이후에는 카스트라토를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1950년대 초 알프레드 델러 이후 가성(假聲)으로 여성의 음역을 내는 카운터테너들이 카스트라토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EMI가 '카스트라토의 시대(The Age of Castratos)'라는 제목으로 출시한 음반은갈루피, 헨델, 글루크, 퍼셀, 라모, 바흐 등 카스트라토들이 활약했던 시기 작곡가들의 작품을 담고 있기는 하나 노래를 부르는 이들은 모두 카운터테너들이다.

안드레아스 숄, 브라이언 아사와 등과 함께 현재 최고의 인기를 얻고 있는 미국출신 카운터테너 데이비드 대니얼스를 비롯, 제라르 레슨, 로빈 블레이즈, 데릭 리레이긴, 아리스 크리스토펠리스, 제임스 바우만, 알프레드 델러 등 당대 최고의 카운터테너 13명의 목소리가 들어 있다.

또 1858년 로마 근교 몬테콤파트리오에서 태어나 1922년 로마에서 세상을 떠난음악사상 최후의 카스트라토 알레산드로 모레스키의 음성이 남아 있는 유일한 녹음인 로시니의 '작은 장엄미사'도 보너스 트랙에 수록돼 있어 흥미를 더한다.

요즘 국내에서도 한창 일고 있는 카운터테너 열풍을 타고 출시된 음반이라고 할수 있는데, 카운터테너 애호가나 바로크 음악 애호가라면 사 둘 만한 음반이다.

대니얼스가 노래하는 슈베르트의 '물위에서 노래함'과 크리스토펠리스가 노래하는 모차르트의 '알렐루야', 모레스키가 노래하는 로시니의 '작은 장엄미사'를 제외하면 모두 바로크 시대 음악인데 선곡이 빼어날 뿐 아니라 연주도 우수해 매우만족스럽다.

특히 대니얼스가 노래하는 세 곡, '물위에서 노래함'과 헨델의 오페라 '세르세' 중 '옴브라 마이 푸', 글루크의 오페라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중 '사랑하는에우리디체를 잃고'는 압권이다.

곡 자체도 더할 나위 없이 품위있는 명곡일 뿐 아니라 폭넓은 음역을 자유자재로 소화해 내며 미성(美聲)을 발산하는 대니얼스의 연주 역시 흠잡을 데 없어 여성소프라노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고아(高雅)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바흐의 '미사 나단조' 중 '신의 어린 양'을 부르는 찰스 브레트의 목소리도 음색은 그리 힘차거나 화려하지 않지만 청아하고 순수한 색조로 교회음악에 아주 잘 어울리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반주를 맡은 계몽주의시대 관현악단이나 일 세미나리오 무지칼레, 라글란 바로크 연주단, 콜레기움 보칼레, 일 콤플레소 바로코 등 고음악 연주단체의 연주 역시바로크 음악 특유의 담백하고 고색창연한 맛을 제대로 빚어내고 있어 멋스럽다.

'작은 장엄미사'를 부르는 모레스키의 음성은 녹음상태가 썩 좋지 않아 다소불만스럽기는 하지만 최후의 카스트라토의 목소리를 접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특별한 의미가 있을 듯하다.

상업적 목적이 강한 컴필레이션이라도 훌륭한 음악적 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는것을 이 음반은 보여 주고 있다. (서울=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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