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소비자의 욕구를 직시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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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의 재정파탄으로까지 치닫고 있는 의약분업 파동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가.

서울대 사회학과 송호근(사진) 교수의 신간 『의사들도 할 말 있었다』는 이번 사태의 본질을 제3자의 입장에서 분석하며 의료대란을 '승자없는 전쟁' 으로 비유한다. 의사들은 존엄성을 잃었고 정부는 원칙없이 흔들렸으며 국민은 의료비 인상과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는 것이다.

'의료분쟁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서' 인 이 책의 저자는 우선 의약분업이 꼬인 근원을 포퓰리즘에 입각한 '의사 두들기기' 로 본다.

의사집단을 비리로 얼룩진 기득권층으로 몰아붙여 의약분업 개혁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본 정부의 자만이 문제의 시작이었다.

또 '국민의 생명을 볼모로 한 집단 이기주의' 란 상투적 표현으로 여론몰이에 나선 언론의 오류도 비판했다.

그는 수가인상이 건강보험 재정위기의 본질이 아님을 역설하면서, 교과서에서 배운 양심진료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현행 의료제도의 실태를 제시한다.

즉 의약분업 후 의료비 급증이 수가인상보다 병.의원 이용횟수의 증가 등 양적 팽창에 있음을 설득력있게 보여준다.

이를 토대로 저자는 '돈은 적게 내고 많은 의료서비스를 원하는 이율배반' 을 극복하기 위해선 정부의 장기적 대안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즉 의료 소비자의 다양한 욕구와 처지에 맞춰 민간보험과 포괄수가제, 개방형 병원제 등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IMF 직후 『또 하나의 기적을 향한 짧은 시련』(나남)이라는 고뇌에 찬 저술로 주목을 받았던 사회학자 송교수의 문제제기는 전문가 집단 등 지식인들의 책임있는 행동을 강조하는 측면에서 충분한 설득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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