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심리전으로 경제가 살아나나

중앙일보

입력

국민에게 '경제 자신감' 을 심어주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잇따르고 있다.

국정홍보처는 우리 경제를 '컵에 반쯤 채워진 물' 에 비유하면서 좌절이나 지나친 두려움보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경제가 회복될 수 있다는 내용의 TV광고를 내보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국민과의 대화 등을 통해 "경제는 잘 될 것이란 믿음이 중요하다" 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특히 진념(陳稔)경제부총리는 "올 경제 운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심리전법' " 이라고 강조했고, 정부 정책도 이를 뒷받침하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우리는 정부측의 이런 해석과 노력에 원칙적으로는 공감을 표시한다.

특히 요즘같이 실물경제보다 소비심리가 더 위축된 상황에서는 국민.기업인의 불안감을 덜어주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가 처한 경제 현실은 이런 '심리적 자신감' 으로 대처하기에는 너무 심각한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환율은 한달 새 1달러당 1백10원 안팎의 급등으로 기업.금융기관의 외채 상환과 물가에 심각한 압박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3월 수출은 23개월 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게다가 미국.일본 등 주요 시장의 경제 상황은 예상보다 더욱 어려워지는 반면 뾰족한 대응 수단은 없어 정말 걱정이다.

이대로 가다간 성장.물가.국제수지 등 세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칠지도 모를 사면초가(四面楚歌)의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물론 한은.전경련 등에서 내놓는 기업실사지수(BSI)가 조금 나아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공적자금 추가 방출과 회사채 신속 인수, 현대에 대한 엄청난 물량 공세 등에 힘입은 '반짝 효과' 이지 근본적인 회복은 아니라는 지적이 높다.

현실이 이런 판에 정부는 '심리전법' 을 들먹이며 낙관론만 되풀이하고 있으니 국민은 되레 더 불안해 하고, 정부에 대한 불신감은 더욱 가중되는 것이다. 경제 주체의 심리 안정을 위해 어느 정도의 낙관론이 필요하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섣부른 회복론은 금물이다. 특히 자신감을 위해 단기.외적 성과에만 급급하다간 정책 왜곡을 더욱 심화시킨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게다가 우리의 투자와 소비 심리는 심리전이나 정부 홍보로 반전시키기에는 상황이 너무 심각하며, 이런 겉치레에 넘어갈 사람도 없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현 상황에서 정부가 선택해야 할 길은 냉철한 현실 인식과 이를 바탕으로 원칙과 일관성있는 대응뿐이다.

지난 주말 陳부총리 주재로 열린 경제정책회의에서는 경제장관 사이에서 정부 정책을 놓고

▶원칙과 청사진 부족
▶임기응변식 처방
▶부처간 혼선
▶밀실 정책
▶무책임 등에 대한 자성(自省)의 소리가 많이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반성만으로는 부족하다. 실천으로 옮겨야 한다. 지금은 경제 비상시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우리의 현실은 경기 진작을 외면할 수도, 그렇다고 구조조정을 미룰 수도 없는 미묘하고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경제팀이 한 마음이 돼 방향을 세우고, 이를 국민과 기업에 알려 공감대를 형성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또 원칙과 일관성있는 추진으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아울러 대통령과 정치권도 상황의 긴박함을 인식, 경제 살리기에 동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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