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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에 울고, 돈에 웃는 의사들' ① 봉직의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돈을 많이 버는 직종이다’ ‘폼이 난다’ ‘언제나 갑이다’.
의사라는 직업을 두고 하는 말이다. 드라마나 영화 속 의사의 이미지만 보면 의사는 늘 안정적으로 수입을 벌어들이는 고소득자로 묘사된다. 병원 내에서 간호사나 의료 노동자에게 큰 소리 치는 일명 ‘폼 나는 직종’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넝쿨째 굴러 온 당신’의 방귀남(유준상 분)과 하얀거탑의 장준혁(김명민 분)의 모습이 그렇다. 하지만 실상은 어떨까. 의사들은 입을 모아 ‘사실과 다르다’고 말한다. 의사들은 많은 돈을 들여 의학 교육을 받고, 오랜 기간 학문과 연구에 몰입하지만 이후의 삶은 그리 녹록치 않다는 것이다.
한국병원경영연구원이 발표한 ‘2010 병원경영통계’에 따르면 병원급 의료기관(인턴․레지던트가 있는 수련병원 240곳)에 근무하는 전문의 1인당 평균 인건비는 2009년(1억 600만원)에 비해 2010년 9200만원으로 13.2%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에 근무하는 유명 교수나 서울 강남의 유명 개원의가 아니라면 일반 개업의나 봉직의, 수련의들의 삶은 겉만 그럴싸하고 실상은 허당인 경우가 많다는 것. 적어도 ‘돈’에 관해서는 말이다. 변형규 전 전공의협의회 회장은 “봉직의는 계약이 해지되는 경우도 허다해 파리 목숨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의사들을 취재하며 기사로 풀지 못했던 의사 생활의 뒷얘기를, 정확하게는 돈 얘기를, ‘돈에 울고 돈에 웃는 의사들’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한다. 첫 번째 주제는 월급쟁이 의사, 일명 ‘페이닥터’(봉직의)다

    수입 안정적이고 골치 아픈 일 없어 페이 닥터 선호 의사 늘어
의사들 사이에서 페이닥터(봉직의)가 인기다. 페이닥터는 일명 ‘월급쟁이 의사’다. 봉직의는 개원을 하는 것 보다 골치 아픈 일이 덜하고 수입이 안정적이기 때문에 이를 선호하는 의사가 많다. 봉직의로 8여 년간 일하고 있는 이성만(40․가명․소아과 전문의)씨는 “개원을 감행했다가 신용불량자로 전락한 선배도 적지 않게 봤고, 개원을 하려면 초기 최소 2억 원 이상의 목돈이 필요해서 봉직의 생활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의대 시절엔 공부만 하면 됐지만 개원 원장으로 살아가려면 환자들 사이에서 인기몰이도 해야 하는데 성격상 잘 맞지 않아서다. 의대 성적과 인기 성적이 항상 비례하는 것은 아니어서 봉직의 생활을 선호한다는 것.
개원가 원장도 동업자보다는 일정한 월급을 지급하는 페이닥터를 선호한다. 경영 상황에 맞게 가변 요인이 줄고, 오히려 경영이 수월하다는 이유에서다. 동업을 했다가 경영이 어려우면 관계도 깨지고 돈 문제도 복잡하게 얽히지만 일정 금액을 주는 봉직의를 고용하면 병원경영에 더 편하다는 것. 의사 구인구직 사이트의 한 관계자는 “예전보다 페이닥터 자리에 대한 의사와 병원의 문의가 늘었다. 페이닥터를 하려는 의사만큼 병의원에서 월급제 동료(페이닥터)를 찾는 경우도 많아졌다”고 말했다.

    병원 폐업 사실 몰라 월급 통째로 못 받아
하지만 봉직의의 삶이 녹록치만은 않다.
울산 지역 출장검진전문병원에 취직한 일반의 김풍기(30․가명)씨는 집은 서울이었지만 울산에 취직하게 된 병원에서 원룸을 구해주고, 페이도 서울권에 비해 넉넉하게 준다는 얘기만 듣고 울산에 내려갔다. 김씨의 취업을 설득한 행정부장에게 근로계약서를 쓰자고 제안했지만 행정 부장은 ‘다른 선생님들도 보통 구두로 계약한다. 나를 믿고 생활하면 된다’고 딱 잘라 거절했다. 별 다른 고민 없이 네트로(4대 보험과 각종 세금을 병원에서 먼저 떼고 주는 연봉 계약 방식) 한 달에 600만원을 받기로 하고 일을 시작했다. 월급은 몇 개월간은 잘 나왔지만 병원에서 김씨에게 불법적인 일을 권유하기 시작했다. 마을 노인들을 픽업해오게 하기도 하고, 의료장비가 망가져 검진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허위로 신체 정보를 기입하도록 했다. 급기야 병원 원장과 행정 부장이 심평원에 허위 진료비를 청구한 사실이 발각되면서 병원은 폐업에 이르렀다. 경찰이 들이닥쳐 원장과 행정부장은 연행됐고, 김씨의 계약을 구두로 진행한 행정부장이 사라지면서 김씨는 월급을 받지 못했다.
내과 의원에서 일하고 있는 가정의학과 전문의 김정현(31․남)씨도 근로 계약서를 제대로 쓰지 않은 탓에 골머리를 앓은 경험이 있다. 원장은 지금까지 근로계약서를 쓴 경험이 없다며 ‘까탈스럽게 굴지 않아도 한 달에 600만원에 플러스 알파로 더 주겠다’고 말했지만 경영 상태가 좋아져도 김씨는 추가로 월급을 받은 적이 없다. 원장이 김씨에 비해 한참 나이가 많아 김씨를 어린애 취급한 게 화근이 됐다. 자신이 선배라며 일을 열심히 하면 내시경 등의 기술을 알려주겠다고 약속했지만 김씨는 원장에게 의학적인 조언이나 술기를 배운 경험이 없다.
더 큰 문제는 세금이었다. 원장은 김씨에게 600만원을 지급하면서도 세금 신고를 할 때에는 김씨에게 200만원씩 지급하는 걸로 세금을 신고해 온 것. 김씨는 원장에게 “왜 그러느냐”고 물었지만 원장은 “오히려 너에게 이득이다. 세금을 적게 내주게 한 건데 왜 불만이냐”며 당연한 관행이라고 큰 소리쳤다. 김씨는 찝찝한 마음이 들었고 나중에 세금 문제로 뒤통수를 맞을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병원 직원 아니지만 병원 일 가장 많이 하는 무급펠로우, 살기 위해 알바는 기본
월급을 받지 않고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펠로우의 삶도 만만치 않다. 지역 대학병원에서 무급펠로우로 일하는 A씨. 의대 시절부터 교수들의 총애를 받고 장래가 촉망되는 이로 여겨졌던 A씨는 어떻게든 대학병원에 남고 싶었다. 개원가나 봉직의 생활을 하는 친구들을 보면서도 한 번도 병원을 떠날 생각을 하지 않고 무급 펠로우로 일했다.
무급펠로우는 월급이 없다. 대신 의국에서 조금씩 쪼개서 한 달에 약 200만 원가량을 받는다. 제약사 지원이 있던 시절에는 그나마 괜찮았지만 최근에는 리베이트 단속 때문에 의국비도 여유가 없다. 교수가 연구비로 받은 비용 중 일부를 떼어 펠로우들에게 지급한다. 의사들의 당일 진료부터 시작해서 연구 등 허드렛일을 담당한다. 시간 여유가 없이 빡빡하게 일하지만 가정생활 유지를 위해 알바를 한다. 외부 당직을 서거나 응급실 알바로 하루 24시간 꼬박 일을 하는 경우도 많다. 병원 직원이 아니기 때문에 가족들 진료비 할인도 되지 않는다. A씨는 “펠로우를 마치고 스텝이 되고 임상교수, 조교수를 거쳐 교수가 되길 바라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을의 존재로 살아야만 하는 것인지 답답하다”고 말했다.
변형규 전 전공의협희외 회장(42)은 무급 펠로우는 병원마다 격차가 심하다고 말했다. “삼성서울병원․서울대병원․서울아산병원․세브란스병원․가톨릭의료원 등 빅 5병원은 연구비가 넉넉해 펠로우에게도 일정 금액을 월급 명목으로 주지만 이들 병원을 제외한 대학병원의 상황은 매우 열악하다”고 말했다.

    보따리장수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걱정
비교적 안정적으로 수입을 올리고 있는 봉직의도 걱정이 있다.
변형규 전 전공의협의회 회장(42)은 “종합병원 등에서 일하는 봉직의는 재계약 문제로 늘 불안하다”고 말했다. 일반 직장인과 달리 1년 단위로 계약이 이뤄지기 때문에 4년의 근무 기간을 보장받는 전공의들에 비해 고용보장 기간이 짧아 늘 속이 탄다는 것.
근무 기간에 대한 불안감은 개원가도 마찬가지다. 내과 전문의로 의원에서 봉직의로 일하는 박정훈(35․남)씨.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점심시간을 포함해 7시간 근무를 하고 토요일에는 5시간을 일한다. 하루에 내원 환자는 300명에 이르지만 원장이 더 많은 인원을 보기 때문에 많이 힘들지는 않다. 네트제로 700만원을 받는데 월급도 시간에 비해 넉넉한 편이라 만족한다. 하지만 35살인 박씨는 40세가 넘고 50대, 60대가 돼서도 봉직의로 일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개업은 꿈도 꾸고 싶지 않지만 병원장보다 나이가 많으면 봉직의로도 생활이 힘든데 보따리장수처럼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계약하는 일이 쉽지 않다. 또 국민연금을 제외하고는 다른 연금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어서 젊을 때 빨리 벌어야겠다는 부담감이 크다.
봉직의, 차라리 공부만 하던 의대 시절 더 편하다
의대를 졸업하거나 인턴, 레지던트를 끝내고 봉직의로 진로를 선택했다면 병의원을 결정하는 것부터 계약하는 일까지 모두 개인의 몫이다. 이때 의사들이 실수를 많이 한다. 일명 질이 좋지 않은 개원가 원장에게 사기를 당하거나 잘못된 계약 조건으로 피해를 입게 되는 경우다.
변형규 전 전공의협의회 회장은 “애초에 전공의 4년차 때 봉직의 생활을 하는 의사에게 필요한 계약 작성법이라던지, 커뮤니케이션 능력, 세금 문제, 적정 페이 등을 찾는 취업 교육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부분 선배에게 묻거나 의사 커뮤니티 사이트에 글을 남겨 도움을 요청하는 식이지만 소극적인 방법에 불가하다는 것. 뒤늦게 봉직의 생활을 시작하며 어려움을 겪고 시행착오도 크다. 변 전 회장에게 봉직의 생활을 하는데 알아두면 유용한 팁을 들어봤다.
첫째, 계약서를 제대로 쓰는 것이다. 계약서를 쓰지 않고 구두로 일을 하는 봉직의가 많다. 종합병원보다 개원가에서 흔하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할 때는 근무 조건, 시간, 근로 기간을 비롯해 자신이 처리해야 하는 일의 범위까지 명시해야 한다. 공휴일 추가 근무나 남자 의사의 경우 예비군 훈련시 대진 여부, 여의사의 경우 임신․출산과 관련된 사항을 명시한다. 또한 진료 중 일어날 수 있는 의료 사고에 대한 의료 사고 배상 보험에 가입해주는지 여부를 확인한다.
둘째는 세금 문제다. 봉직의의 연봉제는 크게 그로스(gross)와 네트(net)방식으로 나뉜다. 대학병원 등 일부 병의원을 제외한 개원가에서는 네트제를 선호한다. 네트제는 세금과 4대 보험을 다 지급하고 세금 납부 후 금액을 봉직의에게 주는 연봉 책정법이다. 이때도 계약서에 세금 문제에 대한 해결 방법을 명시해야 한다. 퇴직을 할 때 원천징수 영수증과 환급금을 돌려받는 일 등도 확인해야 세금 문제로 불이익을 겪지 않는다.
예컨대 네트제로 500만원을 받는 봉직의의 경우, 병의원에서 불법으로 세금 축소를 위해 200만 원 가량으로 월급을 축소 기재했는지 여부 등도 확인한다. 당장은 세금을 덜 내 이익을 얻게 되더라도 불법이기 때문에 나중에 세금 문제가 터질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연말 정산 내역을 꼼꼼하게 다져 본다. 원천징수 영수증도 요구해 확인할 수 있다.
셋째는 블랙리스트 병원이다. 시스템이 불합리하거나 질이 좋지 않은 병원은 계속해서 봉직의와 마찰을 일으킬 수 있다. 봉직의가 자주 바뀌는 병원은 사유를 알아봐야 한다. 의사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알음알음 모아 둔 블랙리스트 리스트를 확인해 입사 시 체크한다.
넷째, 적정 페이를 확인한다. 봉직의들은 의과대학 시절 세금 문제나 연봉 문제 등 봉직의 생활에 대해 배우지 못하고 선배나 동료들을 통해 알음알음 알게 돼 실수를 하는 경우가 많다. 절대적인 기준은 없지만 선배나 동료, 의사 전문 사이트에서 적극적으로 자료를 구한다. 술기를 가르쳐준다는 식으로 박봉을 요구하는 병원도 있다. 술기를 제대로 배우고 나올 수 있는지 확인한다.
다섯째는 병원의 재정 상태다. 병원에 부채가 있는데도 무리하게 봉직의를 구해 월급을 밀리는 경우도 있다. 입사 전 병원의 재정 상태를 확인한다. 대법원 인터넷 등기소를 방문해 등기부 등본을 열람한다. 병원의 주소지만 알면 확인할 수 있다.
여섯째는 월급이 밀린 경우의 적극적인 대처법이다. 월급이 밀렸다면 노동부에 신고를 해서 체불임금 확인서를 받고 법률구조공단에 가서 소송을 신청한다. 퇴직금을 못 받은 경우도 노동부에 제소를 하면 받을 수 있다. 퇴직을 할 때도 원천징수 영수증과 환금액을 챙겨야 세금으로 인한 불이익을 막을 수 있다.
본지의 취재 결과 봉직의 생활에도 어려움이 있었지만 개원가 원장들의 어려움도 봉직의 만큼 컸다. 다음 편에는 개원가 원장의 어려움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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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치선 기자 charity19@joongang.co.kr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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