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년 4월 29일자 사설]

중앙일보

입력

[사설] 일본 법원의 위안부 배상판결

한국의 종군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정부를 상대로 공식사죄와 손해배상을 청구한 소송에 대해 27일 일본의 한 지방법원이 원고측의 일부 승소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은 일본정부가 "위안부들이 전시중 당한 고통에 대해 회복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다" 고 전제, "배상입법을 해야 할 헌법상의 의무가 있음에도 태만히 했다" 고 지적하며 국가가 원고 3명에 대해 각각 30만엔씩의 위자료를 지불하도록 했다.

한일기본조약 협의 등을 통해 문제가 종료됐다는 이유로 공식 거론을 기피해 온 일본정부의 공식입장과 달리 새로운 문제점을 제기했다는 점에서 이번 판결은 의미를 갖는다.

종군위안부문제에 대해 더 이상 조치를 취할 것이 없다는 일본정부의 입장에 비춰 본다면 이 판결은 어느정도 일본의 책임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종군위안부제도를 "여성차별, 민족차별이며 인격의 존엄성을 철저히 침해함으로써 민족의 자존심을 짓밟은 기본적 인권침해 행위" 라는 판결내용은 옳은 지적이다.

그러나 이 판결은 당시의 일본군 행위에 대한 공식사과와 배상문제에는 접근하지 않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일본정부가 피해자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그런 조치를 게을리 해 더욱 피해를 주었으니까 위자료를 줘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위안부문제를 외면해 온 일본정부의 책임만을 묻는다면 수긍할만한 지적이다. 판결내용은 위안부문제에 일본이 궁극적으로 책임이 있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책임규명과 피해배상문제를 언급하지 않은 것은 진실에 대한 논리보다는 정치.사회적 현실을 의식했다는 평가를 받을 소지가 있다. 종군위안부제도가 기본적 인권 침해행위라고 시인까지 했으면 그 책임의 주체도 분명히 밝히는 것이 올바르다.

종군위안부 문제는 이제 일본과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의 양심을 묻는 국제적인 인권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하급법원의 결정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지만 이번 판결이 문제해결의 전향적인 디딤돌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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