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IT 버전 경제기획원 나오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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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호 06면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경선후보가 ‘정부 3.0’과 ‘국가미래전략센터’를 대선 출마선언 후 첫 공약으로 내놨다. 그는 11일 대전 정부통합전산센터에서 “국가 클라우드 컴퓨팅 센터의 방대한 지식정보를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미래전략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국가미래전략센터는 개별 부처를 아우르는 통합적 관점에서 국가 미래를 전망하고 중장기 발전전략을 수립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첫 대선 공약, 정부 3.0과 국가미래전략센터

왜 필요하고 어떻게 하겠다는 걸까. 김광두(싱크탱크 국가미래연구원장·서강대 명예교수) 캠프 정책위원은 “1960년대엔 국가 미래를 생각하는 핵심 두뇌 기능으로 경제기획원이 있었다”며 “이젠 경제 문제도 사회·국제정치·과학기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만큼 정보를 총괄하는 미래전략센터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경제기획원은 재무부·기획처·부흥부 등에 분산돼 있던 경제기획 업무를 통합해 61년 7월 발족했다. 국가경제정책의 총괄 부처다. 경제기획원 장관은 다른 부처 장관보다 서열이 높은 부총리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경제기획원을 통해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했다.

국가미래전략센터를 만들 땐 정부 부처나 위원회 형식이 바람직하다고 자문그룹이 박 후보에게 제안했다고 한다. 하지만 박 후보가 ‘센터’로 정리했다. 그러면서도 차별화 포인트로 삼았다. 이명박 정부는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를 운영했다. 미래 국가비전을 수립하고 대통령 국정 운영에 조언하는 ‘21세기 집현전’ 개념으로 출발했다. 안철수 서울대 교수도 미래기획위원 중 한 사람이었다. 박 후보의 미래전략센터가 미래기획위원회와 다른 점은 ‘클라우드 컴퓨팅 센터’를 통한 정보 분석을 강조했다는 점이다. 클라우드 컴퓨팅이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등 정보기술(IT) 자원을 대규모 데이터센터에 통합·집중시켜 통신망을 통해 어디서든 사용하는 기술이다.

공무원 정보 공개율부터 높여야
그러려면 정부 조직을 바꿔야 한다. 박 후보는 과거 과학기술 전담부처를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 간 칸막이를 없애 중복사업을 줄여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세종시로 정부 부처가 이전하면서 생기는 행정의 비효율은 영상회의 등의 소프트웨어를 활성화해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런 개념을 담고 있는 게 정부 3.0이다. 박 후보는 미국식 행정 개혁사례도 언급했다. 미국의 샌프란시스코는 도시 현안을 민간에 공개해 해결책을 공동으로 찾는다는 것이다. 실리콘밸리의 벤처기업들에 새로운 사업 기회를 제공하는 일석이조 효과도 거뒀다고 밝혔다. 한국에서도 정보 공개를 확대하면 최대 42만 개에 이르는 기업이 창출될 수 있다는 주장도 폈다.

시민단체인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의 전진한 소장은 “선진국에선 정부 2.0 운동이 활발하다”고 말했다. 미국의 경우 오바마 대통령은 2008년 당선되자마자 ‘기술·혁신·정부 개혁 정책팀’을 만들고, 호주는 2009년 정부 2.0 보고서를 내놨다는 것이다.

그런데 박 후보는 2.0(쌍방향)을 넘어선 3.0의 개념을 제시했다. 정부가 국민을 찾아가 맞춤형 행정서비스를 하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노인이 국가로부터 장기요양·노인돌봄·식사지원 서비스 등을 받고 싶으면 노인복지관 등 여러 곳을 찾아다니며 서비스를 신청해야 했는데, 이젠 정부가 통합정보를 갖고서 한 번에 해결해 주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정부 3.0을 만들려면 넘어야 할 벽도 많다. 일단 ‘2.0’도 안 돼 있는 현실이 문제다. 『디지털 거버넌스』란 책을 쓴 연세대 조화순(정치외교학) 교수는 “박 후보가 미래사회에 맞는 정부 운영을 고민했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시민이 참여하는) 2.0도 안 돼 있는 현실에 대한 비판과 반성은 부족한 것 같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공무원 문화의 변화가 따라야 한다. 전진한 소장은 “노무현 정부 때 79%이던 정보공개율이 이명박 정부 들어 67%로 떨어졌다”며 “이에 대한 반발로 시민사회가 정보 공개 등을 요구했지만 공무원들끼리만 정보를 나누는 문화를 바꾸기는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는 “구상만으론 부족하고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부 2.0도 안 돼 있는데” 비판
박 후보의 구상이 ‘표절’이란 비판도 있다. 민주통합당은 11일 논평에서 “2009년 발표된 ‘클라우드 컴퓨팅 활성화 종합계획’을 재탕하고 베끼기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박근혜 캠프 총괄본부장인 최경환 의원이 지식경제부 장관 시절 발표한 계획이다. 이에 대해 최 의원은 “그동안 정부가 해 온 건 전자정부 전산에 머무르거나 쌍방향 정보 교류의 초기 단계”라며 “이번엔 맞춤형으로 가겠다는 것이어서 차원이 다르다”고 해명했다.

데이터 분석을 통해 어떻게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 메커니즘은 아직 모호하다. 송영조 한국정보화진흥원 책임연구원은 “빅 데이터 분석으로 미래전략을 만들겠다는 시도는 이미 구글 등에서 이뤄졌지만 데이터 분석을 넘어선 차원의 미래학은 수립돼 있지 않다”며 “제대로 된 미래 예측이 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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