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퓰리처상 세 차례나 받은 세계화 전도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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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호 28면

언제부터인가 우리에게 ‘세계화’가 피할 수 없는 하나의 명제로 등장했다. 가는 곳마다 ‘글로벌’을 외친다. 세계화와 무관한 것에도 ‘글로벌’을 부쳐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이쯤 되면 세계화 열풍이 아닌 세계화 스트레스다.

박재선의 유대인 이야기 미 언론인 토머스 프리드먼

세계화의 기원에 대해선 설이 분분하다. 로마 제국, 알렉산더 대왕, 몽골 제국.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유럽 제국주의 그리고 산업혁명 등이 각각 세계화의 시발로 꼽히는 등 다양하다. 유대 지성인들은 대체로 세계화주의자가 많다. 이는 이들의 역사적 전통에서 찾아볼 수 있다. 유대인은 십수 세기 동안 세계 각지를 유랑하면서 세계화를 체험적으로 익혔다. 그리고 이들이 박해를 받은 원인 중 하나가 민족주의다. 그래서 유대인 세계화 주창자들은 민족주의를 구시대의 낡은 이념으로 격하시키고 세계화를 새로운 보편적 가치로 정착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유대인 중 세계화 전도사는 많다.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인물은 프랑스 철학자·경제학자인 자크 아탈리와 미국 언론인 토머스 프리드먼(사진)이다.

“SNS가 단편적 메시지 전쟁 조장” 비판
프리드먼은 1953년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 근교에서 태어났다. 프리드먼이라는 유대인 성은 주로 독일·오스트리아·폴란드 등지에 많다. 그는 소년시절 히브리어 야학을 다녔다. 68년엔 이스라엘 키부츠(집단농장) 체험 과정도 거쳤다. 유대인 재학생 숫자가 55%를 넘는 보스턴 외곽에 위치한 브랜다이스 대학을 다녔다. 유대인으론 최초로 미국 연방대법관을 지낸 루이스 브랜다이스(1856~1941)의 이름을 따서 1948년 개교한 학교다. 이어 프리드먼은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중동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학업을 마친 후 UPI 통신사의 런던 지사에 근무하다 레바논 특파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때부터 중동 문제에 대한 명쾌한 보도, 분석으로 이름을 날렸다. 82년 뉴욕타임스(NYT)에 스카우트돼 다시 베이루트 지국장으로 나갔다. 83년 레바논 기독교 민병대 ‘팔랑헤’가 팔레스타인 난민촌에서 민간인을 대거 학살한 ‘사브라 샤틸라 사건’을 취재해 첫 번째 퓰리처상을 받았다. 84~88년 NYT 예루살렘 지국장으로 근무하던 그는 1차 팔레스타인 봉기 ‘인티파다’(Intifada)를 취재, 보도해 두 번째 퓰리처상을 받았다.

프리드먼을 수식하는 용어는 많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국제문제 칼럼니스트, 세계화 전도사, 그린 뉴딜정책의 선구자, 베스트셀러 작가 그리고 퓰리처상 3회 수상자 등이다. 그는 또한 여러 권의 베스트셀러 저자다. 89년엔 베이루트에서 예루살렘까지로 레바논 문제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다뤘다. 2000년 냉전 후 국제질서는 세계화가 필연적 대세라는 내용의 렉서스와 올리브나무를 냈다. 2002년엔 경도와 태도라는 자신의 칼럼 모음집을 출간했다. 이 책으로 세 번째 퓰리처상을 받았다. 2005년엔 역시 세계화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세계는 평평하다를 냈다. 그리고 2008년엔 환경혁명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코드 그린: 뜨겁고 평평하고 붐비는 세계란 책으로 화제를 모았다.

프리드먼은 2009년 ‘글로벌 코리아 2009’ 포럼 참석차 방한했다. 그는 방한 중 강연에서 정보기술(IT)에 이은 청정에너지 기술(ET) 시대가 도래했다고 주장했다.

프리드먼은 글과 말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글로벌 엘리트 중 한 명으로 당당히 자리매김했다. 그는 항상 새로운 지식과 정보로 독자의 사고 전환을 유도했다. 또 새로운 시각과 예리한 통찰력 그리고 남이 생각지 못한 기발한 발상으로 세인을 놀라게 했다. 그리고 항상 문제의 정곡을 찌르는 명쾌함으로 명성을 얻었다. 그가 만든 신조어도 몇 가지 있다. ‘Q세대’(Quiet Generation)란 용어는 오늘날 컴퓨터 공간에만 갇혀 조용히 지내면서 행동 없는 이상을 추구하는 젊은 세대를 비유한 말이다. 그리고 오늘날 세계 지도자 모두 포퓰리즘을 넘은 ‘포퓰러리즘’(Popularism)으로 과도한 대중인기영합주의에 매몰됐다고 비꼬았다. 특히 SNS의 대중적 확산에 따라 지도자들이 단편적인 메시지 전쟁에만 귀를 기울여 국가의 장기적 비전 제시를 게을리한다고 일갈했다.
프리드먼의 전문 분야는 중동 문제, 세계화 그리고 환경 문제다. 모두 오늘날 국제사회에서 관심 있게 다루는 주요 이슈들이다. 그가 이 분야에서 탁월한 전문적 식견을 갖고 있다는 점에 대해선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지 않는다. 다만 그가 이들 문제를 조명하면서 가끔 균형을 잃은 자기 중심의 주장을 편 데 대해 다음과 같은 세간의 비판이 있다.

신제국주의적 강대국 논리 대변자 한계
유대인인 그가 친이스라엘적 바이어스(bias)를 갖고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더라도 이·팔 분쟁에 대해 간혹 일관성 없는 견해를 피력한다. 세계화의 당위성에 대한 주장도 기본적으로 미국 우월주의에 근거한 미국 중심의 세계화에 머문다. 환경오염의 원천적 주범인 미국 등 선진 산업국에 대한 원죄론도 개진된 적이 없다. 지엽적인 팩트를 근거로 자기주장에 대한 과도한 낙관론을 펴는 경우가 많다. 또 신자유주의와 진보 성향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면서 자신의 확고한 이념적 정체성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평도 있다.

세계화와 환경 문제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요구지만 이 두 가지 문제 모두 강력한 국력과 첨단 과학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 등 강대국들만이 주도적으로 끌고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들 비판론자의 집약된 견해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프리드먼의 주장은 신제국주의적 강대국 논리를 대변하는 것으로 폄하하기도 한다. 잘나가는 국제 엘리트 프리드먼에 대한 시샘일 수도 있겠지만 일면 경청할 부분도 없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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