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스펀 美경제 구해낼 수 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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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중앙은행장으로 일컬어지는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역량이 시험대에 올라와있다.

그린스펀 의장은 주가 및 소비자신뢰도의 하락추세 속에 지난주에 올들어 세번째로 0.5%포인트의 금리인하를 단행하는 등 경기를 부추기기 위한 조치를 취했다. 또 경기가 빠른 속도로 둔화될 경우 금리를 다시 인하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는 것이 FRB의 입장이다.

그러나 여전히 경제성장은 둔화되고 있고 소비자신뢰도는 떨어지고 있다. 금리를 계속 내리고 있음에도 주가는 폭락세를 지속하고 있다. 특히 지난주 주식시장에서는 투자자들이 기대했던 0.75%포인트의 금리인하가 이뤄지지 않은데 대한 실망매물이 쏟아져 나왔다.

미국의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은 지난 99년 4.4분기의 8.3%에서 지난해 4.4분기에는 1.1%로 떨어졌다. 이같이 가파른 성장률 하락은 세계2차대전 종전후 처음 있는 일이다. 그린스펀 의장이 FRB의 책임자로 부임했던 지난 87년 이래 지난 14년간 침체를 겪은 것은 단 한번, 그것도 90~91년의 잠깐 기간이었다. 그만큼 그는 통화정책의 수장으로서 경제성장의 연금사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 왔었다.

그러나 올해 1.4분기에는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하게 될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을 정도로 경기는 하강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일부 기업인들은 이같은 상황을 그린스펀 의장 탓으로 돌리고 있다. 그가 지난 99년 6월부터 1년 동안 금리를 너무 많이 올린 반면 경기가 냉각되기 시작했을 때는 제 때 큰 폭의 금리인하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최근호 비즈니스 위크에 따르면 올들어 금리를 잇따라 0.5%포인트씩 세차례 인하한 효과에 대해서는 의문을 나타내는 사람들도 있다. 금리인하의 효과는 과거의 예를 보면 6개월에서 18개월의 시차를 두고 나타나는 것으로 돼있지만 '뒤늦은' 금리인하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가진 분석가들은 FRB의 최근 금리인하 효과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나타내고 있다.

이들의 주장을 들어보면 FRB의 금리인하 효과는 세가지 채널을 통해 가시화된다. 우선 기업과 가계의 자금조달비용을 낮추고 그것이 주식시장을 자극하고 이어 달러화의 가치를 낮춤으로써 효과를 낸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자금조달비용을 낮추는 기능만이 수행되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주가는 올해 1월3일 첫 금리인하가 이뤄진 후 15%나 떨어졌고 달러는 엔화에 대해서는 20개월, 유로화에 대해서는 3개월만에 가장 가치가 높게 평가돼 있는 상황이다.

모건 스탠리 딘 위터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스테픈 로치는 만약 미국 경제가 침체된다면 그것은 정보기술시대의 첫 침체로 그 악영향은 심각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단순한 침체가 아니라 지난 20세기 초반에 겪었던 것과 유사한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 그의 견해다.

역시 과잉투자와 거품경제에 의해 생긴 20세기 초반의 침체는 평균 지속기간이 21개월로, 전후에 재고조정에 의해 치유가 상대적으로 쉬웠던 침체가 11개월이었던 것에 비해 거의 2배나 됐다.

장기적으로 더 걱정스러운 점은 하강국면이 장기화되면서 신경제 발전을 자극했던 창의성의 상실이다.

비즈니스 위크는 신경제가 더욱 위축될 경우 실리콘 밸리와 다른 첨단기술 부문의 경기 회복이 오는 2003년까지는 이뤄지지 않을 것이며 경제성장의 연금사로서의 그린스펀 의장의 이미지는 퇴색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뉴욕=연합뉴스) 강일중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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