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슈퍼은행원 돼야 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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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은행 본점 VIP 고객 전용 프라이빗뱅킹(PB)센터에서 근무하는 임동하(37)외국인투자서비스팀장은 '슈퍼 은행원' 으로 통한다. 투자상담사.외환관리사 등 자격증이 4개며 미국 대학에서 경영학석사(MBA)를 한 그는 부자 손님 2백명을 관리한다.

이들 고객의 전체 예금은 1천5백억원으로 1인당 7억5천만원 꼴이다. 그는 또 외국 대사관과 외국 투자법인을 전담해 여러 가지 상담을 해주는 대가로 매해 7억~8억원의 수익을 낸다.

지난 2월 영국 런던을 관광하던 한 고객이 밤늦게 "중국 도자기를 구입했는데 관세법상 문제가 없는지 알아봐달라" 며 국제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아 연락해 이튿날 고객이 공항에서 아무런 제지없이 입국하도록 했다. 임팀장은 "고객 서비스를 제대로 하려면 금융.세무.법률.주식.상속 등 모든 분야를 두루 알아야 한다" 고 말했다.

인터넷뱅킹과 자동화로 은행원의 단순 창구업무 비중이 줄어들면서 전문지식을 가진 슈퍼 은행원이 각광받고 있다.

조흥은행 기획부 장민기(42)차장은 미국 공인회계사와 미국 재무분석사.국제금융위험관리전문가 등 5개의 자격증을 갖고 있다. 은행 안팎에서 회계.파생상품의 전문가로 인정받아 승진도 동기보다 2~3년 빠르다. 장차장은 "1980년대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할 때 동료들이 '은행원이 복덕방 공부는 왜 하느냐' 며 이상한 사람으로 보았다" 며 "이젠 공부를 어떻게 했느냐며 부러워한다" 고 말했다.

한미은행 명동지점 이종숙(37.여)과장은 지난해 지점 부임 10개월만에 지점 개인고객 수신액을 9백억원에서 1천7백억원으로 끌어올려 올해 한미은행의 베스트 PB로 뽑혔다. 이과장은 금융자산관리사(FP).투자상담사 등 5개 자격증을 갖고 있다.

선물거래상담사 등 자격증이 4개인 신한은행 영동지점 김동부(38)과장은 "고객들에게 주가 차트를 보는 방법이나 증시 동향에 대해 설명하면 믿고 뭉칫돈을 맡긴다" 고 말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밀려나는 동료를 본 은행원들은 살아남고 자신의 몸값을 올리기 위해 자격증 따기에 열심이다.

한국재무설계(FP)협회가 올해 시작한 공인재무설계사(CFP)교육이 인기다. 1천여명이 수강신청을 해 온라인.오프라인을 통해 교육을 받고 있다. 지난해 증권업협회가 도입한 FP 시험에는 두차례에 걸쳐 4만여명이 응시해 5천명의 합격자가 나왔다.

한빛은행 전체 직원 9천9백명 가운데 은행 업무와 관련된 전문자격증 소지자가 3천5백여명. 최근 모집한 FP 통신연수 과정에 5천명이 신청했다. 신한은행의 경우 직원 2천6백명 중 30%가 FP 자격증을 갖고 있으며, 올해 안에 75%로 늘어날 것으로 은행측은 예상했다.

은행들도 전략적으로 직원의 자격증 취득을 권장한다. 조흥은행은 연수 성적을 인사에 반영하는 지식마일리지 제도를 도입하면서 1인 2자격증 갖기 운동을 하고 있다. 또 자격증을 딸 경우 학원비를 지원한다. 국민은행은 미국 재무분석사(CFA) 등 9개 분야의 연수과정을 운영 중이다. 한빛은행도 올해 연수학점제를 도입해 1년에 5학점을 이수하도록 의무화했다.

한국FP협회 서동우 국장은 "전통적인 은행 업무만으론 곤란하며 전반적인 업무에 정통한 금융 주치의가 돼야 살아남는 시대" 라고 말했다.

하재식 기자angelh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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