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정평가원 ‘도종환 시’ 교과서에서 제외 권고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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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 의원

유명 시인인 도종환(민주통합당 비례대표) 의원의 작품을 내년도 중등 1학년 국어 교과서에 싣지 못하게 한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조치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평가원은 교육의 중립성 유지를 위해서라고 밝혔지만 도 의원은 물론 문인단체와 야당까지 반발하고 있다.

9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원장 성태제)에 따르면 지난달 20일 국어교사와 대학교수 등 30명으로 구성된 검정심의회에서 내년에 쓰일 중등 교과서 16종을 심사했다.

민주통합당 도종환 의원이 9일 열린 국회 본회의 말미 ‘5분 발언’ 시간에 자신의 시 ‘흔들리며 피는 꽃’을 낭독했다. 시 낭독에 이어 도 의원은 자신의 시를 교과서에서 삭제하라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권고는 정치인에 대한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형수 기자]

이 자리에서 도 의원의 작품과 이자스민(새누리당 비례대표) 의원 관련 내용이 문제가 됐다. 도 의원은 현직 국어교사이던 1986년 출간한 시집 『접시꽃 당신』으로 이름을 알렸다. 또 2002년 이후 ‘어떤 마을’을 시작으로 그의 시와 산문 여러 편이 국어 교과서에 실렸다. 이번 심사 대상인 16종의 교과서 가운데 8종에도 ‘종례시간’ ‘담쟁이’ ‘흔들리며 피는 꽃’ 등 다섯 편이 담겼다. 필리핀 출신으로 한국인 남편과 결혼했으나 사별하고 여러 어려움을 극복하며 활발하게 활동해온 이 의원의 사연도 2종의 국어 교과서에 소개됐다. 그는 국내 1호 귀화 외국인 출신 국회의원이다.

 평가원에 따르면 당시 회의에선 도 의원 작품과 이 의원 관련 내용이 교과서에 실리는 것은 ‘교육의 중립성 유지’ 조항에 위배된다는 지적이 많았다. ‘교육내용이 정치적·파당적으로 이용돼선 안 되며, 특정 정당·종교·상품·기관 등을 선전하거나 비방해선 안 된다’는 규정이었다. 이에 따라 심의회는 “심사 대상 16종 교과서 중 도 의원 작품을 실은 8개 출판사, 이 의원 관련 내용을 담은 2개 출판사에 관련 내용을 제외할 것을 권고한다”고 결정했다. 평가원 관계자는 “해당 결정은 심사의원 간에 별 대립 없이 대부분 합의하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하지만 도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5분 신상발언을 통해 “정치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교과서에서 작품을 빼도록 강요하는 것이야말로 정치에 대한 잘못된 편견이 아닐 수 없다”고 비판했다. 문인단체들도 가세했다. 도 의원이 부이사장을 지냈던 진보적 문인단체인 한국작가회의의 이시영 이사장은 “김춘수 시인이 1980년대 민정당 국회의원을 했지만 당시엔 그의 작품이 교과서에서 삭제되지 않았다”며 “자의적이고 편파적인 기준이 적용된 정치적 탄압”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 문인단체인 한국문인협회의 정종명 이사장도 “충분히 검증된 순수한 문학작품을 작가의 신분이 바뀌었다고 교과서에 수록할 수 없다면 그 기준이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소설가 이문열씨도 “작품을 쓸 당시 정치적 의도가 없었고 그동안 교과서에 실렸던 작품을 작가의 신분을 이유로 빼라고 하는 것은 온당치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민주통합당도 “국민이 사랑하는 도 의원의 시가 정치 선전문이라도 된다는 말이냐. 의도가 의심스럽다”는 논평을 냈다.

현재로선 평가원이 권고를 철회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평가원은 민간 출판사들이 권고대로 교과서를 보완해오면 다시 심의에 부친다는 입장이다. 성 원장은 “그동안 검정위원회에선 정치적 중립성을 위해 현존 인물은 싣지 않는다는 방침을 고수해 왔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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