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처럼 살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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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8호 31면

살기 어려운 세상이다. 돈 벌기 어렵고, 어른답기 어렵고, 용감하기 어렵고, 평온하기 어려워서, 나답게 살기 어려운 세상이다. 어렵다고 포기할 수도 없을 땐 더 그렇다. 주 중에 신문이나 TV 뉴스를 보는 건 세상살이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배우는 시간인 것 같아서 숙제하듯이 보는 기사 말고 명상하듯이 느낄 수 있는 얘기가 아쉬울 때도 있다.
평소에 일하기 위해 예술작품을 가까이하며 지내지만 정작 나의 삶은 그리 예술적이지 않다. 마치 사건·사고로 가득한 신문처럼 난제가 수북하다. 그중 가장 오래 남몰래 고민해온 문제는 작가들과의 교감이다. 숨 막히도록 멋진 작품을 사랑하는 건 내 맘이지만, 정작 그 작품을 만든 작가와는 대화조차 힘이 들 때도 많다. 그들이 인정을 원할 때 나는 변화를 말하고, 내가 변화를 기다리면 그들은 멈춘다. 그래서 난 애를 써서라도 그들을 움직이는 동력이 무엇인지 알아야 했다.

내가 좋아하는 작품을 만드는 작가들은 가난하다. 아니 작가들은 거의 다 가난하다. 어느 컬렉터가 유명한 원로작가 이름을 대며 그렇게 평생을 열심히 했는데 왜 아직도 생활고에 시달리는지 궁금해하는 걸 본 적이 있다. 한마디로 답을 내긴 어렵겠지만, 그건 아마도 그 작가가 돈을 목표로 삼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부자가 아니라 대가(大家)가 될 거라는 목표의식으로 열심히 달려왔을 것이다. 그들에게 가난은 불편한 것일 뿐 치명적인 장애는 아니다.

그들은 천진하다. 자극에 민감하고 눈길 가는 곳에 마음을 쏟는다. 익숙한 장면에서도 남다른 무언가를 찾아낼 수 있는 힘은 바로 결과를 미리 예측하지 않는 천진함에서 나온다. 가끔 엉뚱한 종교나 사상, 연애 스캔들에 휘말리게 되는 것도 이런 성향이 만드는 사소한 부작용 같은 것일 게다. 예술가의 세계에서 정답은 없으며 시행착오는 일상이다. 아무리 노련한 작가라도 신작이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유치할 정도로 완성도가 떨어지는 단계를 거쳐야만 한다. 마치 아이들이 몸으로 부딪쳐 세상을 배워가는 것처럼 호기심과 실패만이 새로운 아름다움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그들은 처절하다. 가끔 작가들이 신작 발표를 앞두고 이번 작품으로 세상이 발칵 뒤집힐 거라고 말하는 걸 듣게 된다. 그럴 때마다 그들의 오만함에 난감해지기도 하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속마음을 숨기고 있는 나의 소심함을 반성하기도 한다.

하지만 쿠르베가 그랬고 고흐가 그랬듯이 그들의 오만함이 인생을 다 바쳐서라도 이루고 싶은 가치에 대한 절실한 몰입에서 나온 것이라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처절한 열망이 언젠가는 세상을 놀라게 할 수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그들은 뒤돌아보지 않는다. 이미 자신의 손을 떠난 작품을 곱씹기보다는 항상 지금 하는 작업에 몰두한다. 그리하여 시간은 그들에게 기회가 된다. 사실 유명한 예술가들 중엔 요절한 천재보다 스스로 역사를 쓰고도 남을 만큼 장수한 사람이 월등히 많다. 그들은 보통 사람들이 생산적인 활동에 집중하는 시간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은퇴 없이 창작 활동을 지속했는데, 그 비결은 아마도 그들의 관심이 항상 현재나 미래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가난하게, 천진하게, 처절하게, 후회 없이 사는 그들은 분명 일반적이지 않다. 남들과 같아지는 순간 죽기라도 할 것처럼 매순간을 다르게 선택한다. 그래서 그들은 창의적인 인간이다. 창의성이 밥 먹여주느냐고? 배는 몰라도 마음은 채워준다. 최소한 그들은 스스로를 가장 자기답게 지키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누구의 탓도 하지 않고 자족하는 삶을 산다. 세상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말이다.
나는 자주, 그들이 부럽다.



신수진 연세대 인지과학연구소에서 일한다. 수용자 중심의 예술비평을 바탕으로 전시·출판·교육 등 시각적 소통이 필요한 다양한 방면에서 작업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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