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만원 월급 쪼개 15년 … 위대한 기부 1000만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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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그동안 모시고 살았잖아. 너네 식구가 좀 알아서 해!”

 “그 돈 우리가 다 하라고? 오빠네가 알아서 하지.”

 1998년 서울대병원 환경미화원으로 첫 출근을 한 이연수(57·여·사진)씨는 우연히 환자 가족 대기실에서 이 같은 대화를 듣게 됐다. 말기 암 환자가 호흡기를 단 채 병실에 누워 있는데, 바로 옆방에선 가족들이 병원비 문제로 말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이씨는 “그때 ‘돈 없어서 치료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꼭 돕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가족들이 그렇게 싸우고 있다 보면 간혹 환자가 듣고 나와 소리를 지른다. ‘너희들 다 필요 없다’고. 형편이 됐더라면 이렇게 싸울 일도 없잖나. 그래서 기부를 결심했다.”

 그리고 15년이 지났다. 이씨는 지난달 26일 서울대병원에서 불우 환자를 돕기 위해 만들어진 ‘함춘후원회’에 1000만원을 쾌척했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알뜰살뜰 모은 돈이었다. 이씨의 월급은 수당까지 합하면 120만원 남짓. 언젠가 기부를 하겠다는 생각에 생활비를 빼고 남은 돈은 꼬박꼬박 저금을 했다.

 다짐을 행동으로 옮기기로 마음먹은 것은 지난해 가을. 이씨는 “애들이 다 커 여유가 생기자 남편에게 처음으로 기부의사를 밝혔다”고 말했다. 개인택시를 운전하는 남편 최종용(60)씨는 “뭐 당신이 하고 싶으면 해야지”라며 흔쾌히 동의했다고 한다. 남편은 기부금에 돈을 보태기도 했다. 이씨는 “당시 내가 ‘한 장은 해야지’라고 말하니 이 양반(남편)이 한참 말이 없다가 ‘한 장도 한 장 나름인데 어떤 한 장이냐’고 되물었다”며 “1억원을 생각한 줄 알고 놀랐던 것 같다”고 웃었다. 그러면서 “가수 김장훈씨가 ‘기부는 나 자신이 기뻐지기 위해 하는 것’이라고 말한 게 기억난다. 그의 말이 정말로 맞다”고 말했다. 또 “아픈 것도 힘든데 돈까지 없으면 정말 서러울 것이다.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평생 집에서 살림만 하던 이씨는 일도 하고 봉사도 할 겸 해서 병원 환경미화원 일을 시작했다고 했다. 오전 5시부터 오후 6시까지 청소일은 무척 고되다. 이씨는 “젊은 사람들이 월급 적고 일이 힘들다고 직장을 그만두는 걸 보면 안타깝다. 조금만 더 버티면 정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며 “내가 30만원(첫 월급 액수) 받는다고 병원을 나왔다면 이렇게 기분 좋은 기부를 할 수 있을까”라고 말했다.

 비가 많이 내린 5일 이씨는 인터뷰를 마친 뒤 “바닥이 미끄러워 환자들이 미끄러져 다칠 수 있다”며 병원으로 서둘러 돌아갔다.

손광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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