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그날처럼 … 박지성, 히딩크 품에 안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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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골을 넣은 박지성(31·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 한달음에 벤치로 달려갔다. 거스 히딩크 감독은 오른손에 든 수건을 휘휘 돌리며 제자에게 ‘어서 오라’고 손짓했다. 박지성은 히딩크의 품에 얼싸안겼다. 히딩크는 관중을 향해 어퍼컷을 휘둘렀다. 관중석에서는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2002년 월드컵 포르투갈전에서 그랬던 것처럼.

 5일 서울 하늘은 잔뜩 찌푸렸고, 굵은 비를 뿌려대며 심술을 부렸다. 그러나 ‘역전의 용사’들은 다시 뭉쳤고, 그들을 보기 위해 수많은 축구팬(3만7155명)이 서울월드컵경기장을 찾았다. 올해 K-리그 올스타전은 2002년 월드컵 멤버인 ‘팀2002’와 현재 K-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들로 구성된 ‘팀2012’의 대결로 꾸려졌다. 시곗바늘은 10년 전 그날로 돌아갔다.

◆기발한 세리머니=전반 15분. 팀2012의 에닝요(전북)가 이운재(39·전남) 골키퍼를 제치고 골을 넣었다. 동료들은 사전에 약속한 대로 대열을 맞춰 섰고, 김영광(울산) 골키퍼만이 에닝요에게 달려왔다. 쪼그려앉은 김영광을 에닝요가 굴렸고 대열을 맞춰 서 있던 선수들이 쓰러졌다. 인간 볼링 세리머니였다.

 윤빛가람(22·성남)은 하늘같은 선배 이동국(33·전북)이 골을 넣은 뒤 신태용 감독에게 달려가자 다리를 걸어 넘어뜨린 뒤 대신 신 감독과 기쁨을 나눴다. 오랜만에 선수로 돌아온 FC 서울 감독 최용수(39)는 전반 25분 골을 터뜨린 뒤 유니폼을 벗어 던지고 넉넉한 배를 드러낸 채, 근육을 뽐내는 듯한 포즈를 취했다. 무언가 말을 하려는 최용수에게 동료들이 달려들어 입을 막았다. 유로 2012에서 이탈리아의 ‘악동’ 발로텔리가 했던 세리머니를 그대로 흉내 낸 것이었다. 최용수의 익살스러운 행동에 경기장은 웃음바다가 됐다.

◆스페인전 감동을 다시=하프타임에는 특별한 승부차기 이벤트가 열렸다. 2002 월드컵 스페인과의 8강전 승부차기의 감동이 재현됐다. 당시 스페인전 키커로 나섰던 황선홍-박지성-설기현-안정환-홍명보가 그때와 똑같은 순서대로 나왔다. 당시에는 한 명도 실축하지 않았지만 이번엔 안정환이 장난스레 왼발로 차려다 실축을 하고 말았다. 홍명보는 유로 2012에서 화제가 됐던 파넨카 킥(공을 살짝 띄워 차 골키퍼를 속이는 페널티킥)을 선보였다.

◆부끄럽지 않았던 형님과 아우=후배들은 선배들을 상대로 설렁설렁 뛰지 않았다. 전반 초반 3골을 몰아쳤다. 자존심이 상했을까. 형님들이 힘을 냈다. 전반 20분이 지날 무렵 안정환·최용수를 비롯한 5명이 대거 교체 투입된 후 2골을 만회했다.

 월드컵 멤버들은 특별 룰에 따라 교체로 나가 잠깐 쉰 뒤 다시 들어올 수 있었다. 마흔을 넘겨 체력이 부친 황선홍(44·포항 감독)도 후반 휴식을 취한 뒤 다시 나왔다. 2002 월드컵 폴란드전 선제골의 주인공 황선홍은 골을 노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결국 경기 막판 골을 성공시켜 체면치레는 했다. 경기는 팀2012가 6-3으로 이겼다. 3골을 터뜨린 ‘올스타전 단골 MVP’ 이동국이 또다시 MVP가 됐다. 하지만 이날은 모두가 승자였고 모두가 MVP였다.

[사진출처=임현동, 이영목 기자/연합/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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