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파노라마] 우승의 조건(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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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은 감독의 머릿속에서 나온다. 전력이 다소 쳐지는 팀일지라도 시즌 전에 우승을 노리지 않는 감독은 없다는 말이다. 한국프로야구의 경우 소위 반타작만 하더라도 포스트시즌에서 우승을 노려볼 수 있기에 감독의 머릿속엔 별별 계산이 뒤엉켜있기 마련이다.

지난 시즌 김재박 감독의 현대호가 일방적인 우승을 한 이후 야구계 한편에선 재미없는 야구로 일관해 관중동원 실패의 책임을 전가하기도 했다. 이른바 '김재박 야구'에 대한 논쟁이 제기된 것이다.

하지만 그 논쟁은 금새 수그러들었다. 우리 프로야구가 '우승을 위한 전쟁'이라는 점에 대해 야구계 내에서는 토를 달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엄연히 팬들이 있고, 팬을 위한 야구로 가고는 있지만 아직은 모기업 홍보를 위한 우승에 치중하는 야구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시즌 초반부터 선두를 굳게 지킨 현대의 우승은 그룹차원에서 볼 때 효자노릇을 단단히 한 셈이고, 타 팀 감독들과 관계자들에겐 엄청난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힘겹게 선두를 쫓거나 쫓기며 사투를 벌이는 과정 없이 우승을 한 때문이다.

팬들 입장에선 재미가 반감될 요인이긴 하지만 감독입장은 사뭇 다르다. 선발투수는 나오는 족족 제 몫을 다하고 철벽수비에 방망이까지 쌩쌩 돌아가니 아무 걱정이 없어 보이지만 이런 팀일수록 한쪽이 무너지면 선수단이 위축, 급격한 하강페이스가 장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올 시즌 각 팀의 감독들이 나름데로 출사표를 던지는 시점인 지금 흥미거리 하나가 우리 앞에 놓여있다. 과연 김응룡 감독의 삼성이 우승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해태시절 V9의 위업을 달성한 우승제조기 김응룡 감독.

야구를 모르는 사람들은 '선동열 이종범 등 기라성 같은 스타를 데리고 그것도 못하겠냐 나라도 하겠다' 라는 말을 한다. 하지만 대스타 일수록 조정하기 어려운 법. 강력한 카리스마와 야구색깔을 가진 김 감독의 능력은 이미 세계가 인정했다.

20년 동안 한국시리즈를 제패하지 못한 삼성야구의 한. 과연 김 감독이 한을 풀어줄 수 있을지 아니면 우승을 못한 채 미스테리를 이어갈 것인지는 시즌 내내 그리고 한국시리즈가 끝날 때까지 커다란 흥미를 제공해 줄 것이다.

바싹바싹 마르는 입.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한 안타까움. 끓어오르는 환희가 교차하는 감독의 자리에 앉은 8인이 펼칠 머리싸움은 이제 우리 앞에 다가왔다. 상대팀이 아닌 운명과 싸우는 그 머릿속의 그림은 야구장에 고스란히 펼쳐질 것이다. 8명이 가진 8개의 열쇠 중 어떤 열쇠가 우승의 문을 열지 자못 궁금해지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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