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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복지 포퓰리즘이 부른 영·유아 무상보육 중단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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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0~2세 영·유아에 대한 전면 무상보육이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고갈로 시행한 지 1년도 안 돼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재정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전면 무상복지 포퓰리즘이 부른 화(禍)다. 보육비 지원은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절반씩(서울시는 지방정부가 80%) 부담하도록 돼 있는데 이를 위해 책정된 지방정부의 재원이 턱없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지방정부 부담 비율이 높은 서울 서초구의 경우 당장 이달 10일이면 배정된 예산이 소진된다고 한다. 서울의 다른 구(區)들도 사정이 비슷해 중앙정부의 별도 예산지원이 없으면 8~10월 중이면 예산이 바닥날 지경이다. 서울 이외의 지방도 9월부터 12월 사이에 무상보육 예산이 줄줄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사실 영·유아 무상보육제도의 파탄은 시작부터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다. 지난해 말 정부는 소득 하위 70%를 대상으로 0~2세 보육비를 지원할 계획이었으나 국회 심의 과정에서 지원 대상이 소득에 관계없이 전 계층으로 확대됐다. 이 바람에 보육비 지원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이 된 것이다. 그러자 지난 3월 전국의 광역지방자치단체장들이 정치권과 중앙정부가 일방적으로 정한 무상보육제도를 유지할 수 없다며 집단적으로 반발하고 나섰다. 당시의 우려가 이제 현실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급기야 정부는 전면 무상보육제도를 소득에 따른 선별 지원방식으로 전환하겠다는 의도를 표명했다. 김동연 기획재정부 2차관은 최근 “재벌가의 손자에게까지 주는 보육비를 줄여서 양육비를 차상위 계층에 더 주는 것이 사회정의에 맞을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에서도 “실수요자에 적합한 보육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도록 시설보육과 가정양육 간 균형 있는 지원체계를 정립하겠다”고 밝혀 어떤 식으로든 현행 전면 무상보육제도를 손보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문제는 시행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무상보육제도가 지방정부의 재원 고갈로 중단되거나 지원 방식이 수정될 경우, 사회적 혼란과 정책 신뢰도의 손상이 적지 않으리란 점이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1차적 책임은 재정부담을 도외시한 채 무상복지 포퓰리즘을 밀어붙인 정치권에 있다. 그러나 사전에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던 전면 무상복지의 폐해를 방치했다가 이제 와서 전면 수정을 외치는 정부도 그 책임을 면하기는 어렵다.

 정치권과 정부는 당장 줄줄이 예고된 무상보육비 지원 중단사태를 수습할 대책 마련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 그런 다음 내년 예산 편성에 앞서 전면 무상보육제도를 어떻게 개편할지를 심도 있게 논의해 국민이 납득할 만한 해법을 내놔야 한다. 그것이 그간의 과오를 반성하고 무상복지 포퓰리즘의 부담을 국민들에게 떠넘기지 않는 길이다. 또한 이번 사태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 무분별한 복지 포퓰리즘 경쟁을 불식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