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 Report ③ 브랜드 리뉴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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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웨스트우드는 리뉴얼의 일환으로, 옷을 구매하는 고객에게 안전산행 보험을 들어주는 캠페인을 시행하고 있다. 올해가 두번째로 9월부터 실시한다.2 톰보이는 2월 재론칭하고 3월 신세계 강남점에서 매출 2억원을 달성했다. 사진은 클로에 쉐비니가 등장한 톰보이의 새로운 광고 비주얼. 3 올 하반기에는 노티카가 국내에 세 번째로 재론칭한다. 캐주얼 브랜드를 버리고 ‘노티카 아웃도어’로 컨셉트를 바꿨다. 사진은 노티카의 FW 광고 비주얼.4 영국 코스메틱 브랜드 더바디샵도 6월 브랜드 리뉴얼을 발표했다. 전 세계 매장을 자연에 더 가까운 컨셉트인 부티크 매장 ‘펄스 스토어’로 새롭게 단장한다. 사진은 영국 모델 릴리 콜과 찍은 광고 비주얼.5 헤드는 디자이너 최범석을 영입해 기존 타깃인 40~50대는 물론, 10~30대까지 수용할 수 있는 젊은 감성을 표방하고 있다.

여자가 장롱 문이 튕길 정도로 옷을 쌓아두고 “입을 옷이 없다”고 말하는 건 대부분 ‘사실’일 수 있다. 장롱 속에 있는 옷이 모두 지금 입을 수 있는 옷은 아니란 뜻이다. 낡고 헐은 것부터 유행이 지난 것까지. 그 중에는 브랜드가 확연히 드러나는 옷도 있다. 등 뒤에 로고가 크게 쓰인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의 청재킷, 목 주위의 깃이 빳빳하게 살아있던 노티카의 점퍼, 힙합바지처럼 통이 큰 후부의 청바지…. 한때 유행의 중심에 서 있었던 옷이라도 과도하게 뜨거웠던 열기가 식은 뒤엔 입을 수 없게 되고 마는 게 국내 패션의 현실이다. 그렇다고 브랜드들이 그대로 사그라지진 않는다. 다시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리버스(Re-birth)한 '리뉴얼'로 돌아온 그 시절 브랜드가 있다.

올해 2월 톰보이가 재론칭을 했다. 국내 브랜드 중에서는 최초로 여성 청바지와 티셔츠를 선보인 그 ‘톰보이’다. 양장점에서 옷을 맞추고 재래시장에서 쇼핑을 하는 게 일반적이었던 1977년에 등장해 당시 패션 업계를 풍미했던 브랜드다.

톰보이의 재론칭과 비슷한 시기에 후부는 ‘리버스 프로젝트’라는 이름 아래 브랜드 컨셉트와 로고, 심벌, 상품을 모두 새로 정비했다. ‘리버스’를 위해 디자이너 서상영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영입했고 빅뱅의 탑을 메인 모델로 선정했다.

기존의 유명 디자이너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영입한 것은 헤드도 마찬가지다. 올초에 스타일을 확 바꾼 헤드는 하반기인 가을겨울 시즌을 더 강하게 밀어붙이기 위해 디자이너 최범석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영입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한때 명성이 자자했던 브랜드라는 것이다. 톰보이는 1970년대 가부장적인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여성이 입을 수 있는 캐주얼 옷을 제안해 화젯거리를 몰고 왔고, 헤드는 1990년대 불어 닥친 스포츠 열풍의 중심에 있었다. 후부 역시 2000년대 초반 인기를 끈 스포츠 캐주얼 브랜드다.

명성도 유행 앞에서는 덧없을 때가 있다. 빠르게 변하는 유행이 브랜드의 이미지까지 좌지우지하기 때문이다. 특히 2000년대 중반 해외 브랜드의 국내 직진출이 이어지며 아이덴티티가 약한 국내 브랜드들이 시장에서 설 자리를 잃어가기 시작했는데, 톰보이도 그 중 하나였다. 직진출 브랜드가 국내 패션을 점령한 이후로는 자라, H&M, 유니클로 같은 SPA 형태의 브랜드가 한국을 강타했다.

톰보이를 총괄하는 조병오 이사는 브랜드가 살아남기 위한 키워드를 ‘브랜드의 철학과 아이덴티티’라고 꼽았다. 조 이사는 “백화점에 가보면 브랜드는 달라도 비슷한 옷이 죽 진열돼 있다. 매출을 올리기 위한 방편”이라며 “톰보이 재론칭을 1년 간 준비하며 추구한 것은 브랜드 고유의 특색이 있고, 색깔이 맞는 소비자가 브랜드를 좇는 형태"라고 설명했다. 요즘 브랜드가 소비자와 유행을 좇아간다면, 그 반대 성격의 브랜드인 셈이다.

소위 명품처럼, 소비자가 브랜드를 좇게 만들려면 우선 옷부터 달라야 했다. 조 이사의 표현에 의하면 ‘외형이 아니라 내면이 중요한 옷’이다. 패턴부터 바꿨다. 눈으로 봤을 때 화려한 옷이 아니라 입었을 때 실루엣이 좋은 옷을 컨셉트로 잡았다. 모델은 옷 잘 입기로 소문난 모델 ‘클로에 쉐비니’를 섭외했다. 뉴욕에서 가장 핫한 멀티숍 오프닝 세르모니와 협업한 ‘클로에 쉐비니 포 오프닝 세르모니’ 라벨의 디자이너로도 활약 중인 패션 아이콘이다.

SPA브랜드에 대항할 수 있게 가격도 낮췄다. 생산 구조를 몇 단계씩 거치는 기존 구조를 축소해 가격 거품을 걷었다. 이른바 ‘클린스마트 프라이스 정책’이다. 재킷은 19만~20만원대, 티셔츠는 저렴한 게 3만9000원, 비싼 것은 8만9000원으로 책정했다. 기존 여성복에 비하면 20% 정도 낮아졌다.

가장 눈여겨볼 점은 마케팅 전략이다. 매스미디어 광고 대신 소규모의 다양한 마케팅을 활용했다. SNS와 블로그를 활용하고 대학가에서 브랜드 스토리가 담긴 잡지를 나눠주는 식이다. 텔레비전만큼 폭발적이진 않지만 톰보이의 아이덴티티를 좇는 매니어가 형성됐다.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강화해야 하는 국면을 맞은 것은 다른 브랜드들도 마찬가지다. 스포츠 브랜드 헤드는 스포츠와 아웃도어, 캐주얼의 브랜드 조닝의 경계가 점차 무너지며 브랜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기 위해 리뉴얼을 감행했다. 올 초에 ‘프레시 업 유어 마인드’를 모토로 정하고 옷을 세 가지 라인으로 재정비한 헤드는 올 가을에는 더 전략적인‘리뉴얼’을 예고하고 있다. 디자이너 최범석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영입한 첫 시즌이 이번 가을겨울이다. 큰 리스크가 없도록 리뉴얼을 장기적 프로젝트로 두고 단계별로 과정을 보여주자는 의도다.

‘웨스트우드’도 리뉴얼을 장기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1990년대 진 캐주얼이 트렌드였던 때에 나온 진 브랜드다. 주식회사 젯아이씨가 2001년에 웨스트우드를 인수하며 아웃도어 브랜드로 탈바꿈했다. 아웃도어 브랜드로 전개하며 마트를 중심으로 120개 매장을 운영해왔지만 재작년 리뉴얼을 선언하고 정식으로 상품 구성을 한 후 단독 매장을 내기 시작했다.

웨스트우드의 특징은 고가가 넘치는 기존 아웃도어 시장의 틈새를 공략한, 한국의 산악지형에 적합한 이지 아웃도어 스타일과 그에 맞는 중저가 가격이다. 한지영 마케팅 부장은“2010년 리뉴얼을 시작했지만 현재도 리뉴얼 중”이라며 “웨스트우드의 리뉴얼 핵심은 ‘고객을 위한 혜택’”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부터 시행한 안전산행캠페인과 올해 진행 중인 독도 사랑 캠페인이 그 대표적인 예다. 만에 하나 있을 수 있는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옷을 구매하는 사람들에게 안전산행 보험을 들어주고 독도의 동도와 서도 봉우리 이름 짓기 공모를 통해 사회활동을 펼치는 것이다.

이쯤에서 소비자가 조심해야 할 부분은 리뉴얼이 진짜 ‘리뉴얼’하냐는 점이다. 사실 단어 자체가 그리 새로운 말이 아닌데다, 많은 브랜드들이 새 제품을 몇 개 만드는 것으로‘리뉴얼’이란 단어를 애용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톰보이의 조 이사는 “새 브랜드를 론칭하는 것보다 기존 브랜드를 리뉴얼해 성공시킬 확률이 낮다”고 설명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뉴얼을 하는 이유는, 역사가 있는 브랜드의 가치를 재사용할 수 있어서다. 또 이미지를 잘 바꿀 수만 있다면 성공할 확률도 높다. 예전의 고정 고객들이 확보돼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리뉴얼은 브랜드라면 겪어야 할 숙명과 같다. 패션에 민감한 사람들은 가판에서 옷을 사 입을 순 있어도 ‘올드’한 브랜드의 옷을 입진 않기 때문이다.

<이세라 기자 slwitch@joongang.co.kr
/사진=톰보이ㆍ헤드ㆍ웨스트우드ㆍ노티카 아웃도어ㆍ더바디샵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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