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모두가 돌연사를 꿈꾸는 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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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안혜리
증권팀장

“혹시 돌연사를 꿈꾸십니까?”

 누군가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으면 “그 무슨 해괴한 소리”냐고 버럭 화를 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우재룡 삼성생명은퇴연구소장은 농반진반으로 “한국은 모두가 돌연사를 꿈꾸는 나라”라고 자주 얘기합니다. 우 소장이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수명이 늘어난 만큼 노년의 ‘건강 리스크’도 함께 커지지만 은퇴설계를 할 때 누구도 이 부분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는 거죠. 큰 병은 물론이고 잔병치레에 들어가는 의료비나 간병비 등은 은퇴 재무설계 항목에서 아예 빠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물론 은퇴 후 생활비만 마련하기에도 빠듯한데 병원비 청구서까지 미리 계산 속에 넣을 만큼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다 보니 다들 은연중에 은퇴 후 건강하게 살다 어느 날 갑자기 죽는 돌연사를 꿈꾸고 있다는 게 사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다릅니다. 젊은 중장년층이라면 모를까, 노년층 돌연사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돌연사는커녕 과거엔 ‘죽을 병’이라던 난치병도 치료하는 세상입니다. 대부분 마지막까지 엄청난 병원비를 쓴 후 병원에서 생을 마감하는 게 보통입니다. 의료비와 간병비를 은퇴자금으로 마련해 놓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점점 늘어만 가는 수명은 축복이 아니라 재앙인 셈입니다. 변변한 치료도 못 받고 거리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거나, 아니면 남은 가족에게 막대한 빚만 남기게 될 테니까요.

 그나마 남자는 형편이 낫습니다. 병석에 눕는 남성 노년층의 84%가 아내에게 간병을 받는다고 합니다. 막말로 남자는 아무 은퇴 계획도 하지 않고 있다가 아파서 드러누우면 아내가 남편 죽을 때까지 다 뒤처리를 해준다는 얘기입니다. 여자는 그 점에서 더 불리(?)합니다. 여성의 평균 기대수명은 84.1세입니다. 남성보다 평균 7년을 더 삽니다. 실컷 남편 병수발을 하느라 내 건강 해치며 남편이 남긴 쥐꼬리만 한 은퇴자산을 다 쓰고도 7년을 더 혼자 생계를 감당해야 합니다. 과거엔 자식들이라도 홀어머니를 보살폈지만 이젠 그마저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본인 은퇴자금도 부족한, 같이 늙어가는 자식이 어떻게 홀어머니까지 부양하겠습니까.

 남성보다 여성에게 제대로 된 은퇴설계가 더 필요한 이유입니다. 전업주부든, 직업 있는 여성이든 은퇴설계를 비롯한 자산관리를 남편에게만 전적으로 맡기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만약 은퇴 후 쓸 용도로 개인연금 같은 금융상품에 가입한다면 가급적 아내 명의나 아내를 수령인으로 하십시오. “왜 그래야 하느냐”고 묻는 남편이 있다면 이렇게 말해 주세요. “내가 당신보다 7년 더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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